생활비 대출을 반 년 이상 갚지 못해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슬픈 청춘’이 지난해 5071명으로 4년 전의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동아일보가 한국장학재단의 ‘등록금 및 생활비 대출 신용유의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다. 정규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인턴만 반복하는 청년이 많아지면서 호모인턴스(인턴 인간), 티슈인턴(일회용 티슈처럼 버려지는 인턴)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이 청년실업의 현주소다.
한국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은 청년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무너진 것은 양극화 때문이고, 양극화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심화됐다. 무엇보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부족 현상은 구직에 실패한 청년 자신은 물론이고, 그런 자녀를 둔 가정에도 비극이다. 이 박탈감은 때론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금수저’ 논란에 ‘헬조선’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도, ‘공정한 경쟁’이 시대적 화두로 부상하는 것도 들여다보면 일자리 부족에서 출발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도 사실상 끊어졌다. 우리나라 임시직 근로자가 1년 후에도 임시직일 가능성은 6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인턴이 정규직 고용으로 가는 디딤돌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계속 남게 하는 덫이라는 얘기다.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는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기득권 세력과 반(反)기득권 세력 간의 갈등을 키우면서 사회 전반을 대결 구도로 몰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은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공부문에서 81만 개,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등 총 13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재원 조달 방안도 없는 ‘묻지 마식 정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공부문을 통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기업 규제 완화나 노동개혁 같은 근본적인 해법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청년 취업난의 해법으로 청년인턴 확대를 주장한 것은 ‘호모인턴스’의 실상조차 모르고 있다는 소리다. 청년들은 일자리에 목숨을 거는데 대선 주자들은 일자리 공약이 득표 전략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건가.
2015년 9월 노사정 대타협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파기를 선언하고 야권이 노동개혁법안 처리에 반대하면서 흐지부지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2배에 이르는 등 노동시장은 과거로 후퇴했다. 독일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시행한 하르츠개혁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속했던 사민당 정권이 시작하고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가 속한 기민당 정권에서 결실을 거둔 10년 장기 프로젝트다.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한 덕분에 2005년 15.8%였던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2013년 7.8%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쏟아내는데도 청년실업이 되레 악화되는 것은 일자리 수에만 집착하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구직자가 선호하는 일자리에 대한 분석 없이 중앙 부처가 백화점식 대책만 쏟아내면 저임금 비정규직 고용을 잠시 늘릴 수는 있지만 고용 상황은 금방 악화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고용 창출력이 큰 의료와 관광 등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대폭 풀어야 청년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대선 주자들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 특별법 처리에 총대를 메야 한다. 차기 대통령을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단연 청년 일자리 창출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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