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예상을 웃도는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26일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감격해하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와 대내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컸지만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낸 데 대한 자부심도 묻어났다.
설을 앞둔 이날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을 발표한 기업에는 SK하이닉스,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LG화학,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이 망라됐다. 냉각된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 주요 기업 지난해 성공적 마무리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네이버 등은 사상 최대의 매출 및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 치우며 2016년을 마무리했다.
기아차는 니로와 K7 등 신차 출시 효과 등으로 사상 처음 한 해 매출 50조 원을 돌파했다. 기아차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2조7129억 원, 2조4615억 원이었다. 2015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6.4%, 영업이익은 4.6%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모델인 레저용차량(RV)의 판매가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에서 스포티지, 프라이드, K3의 판매가 늘었고 유럽에서도 프라이드, K5가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의 실적 고공 행진도 돋보였다. 현대모비스는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조 원을 돌파했다. 연간으로는 매출액 38조2617억 원, 영업이익 2조9047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모비스 측은 “고급 차종 부품 공급과 애프터서비스(AS) 부품 판매가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에 새로 세운 공장의 초기 투자비용과 파업으로 인한 고정비 부담으로 수익은 소폭 줄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매출 18조7445억 원, 영업이익 1조527억 원으로 건설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이 2.0%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7% 늘었다. 지난해 수주액도 21조2295억 원으로 전년보다 7.1% 늘었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맏형으로 꼽히는 네이버는 연매출 4조 원,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네이버는 이날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연간 매출액이 전년보다 23.6% 오른 4조226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간 영업이익은 1조1020억 원이다.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이 크게 늘었다. 4분기 해외 매출액은 3746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4% 늘었다. 4분기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5%다. 글로벌 ICT 업계의 진입장벽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도 ‘우물 안 개구리’ 처지를 벗어날 가능성을 봤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와 LG화학은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SK하이닉스는 2015년 3분기(7∼9월) 이후 5개 분기 만에 1조 원대 영업이익을 회복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7조 원 투자 계획도 밝혔다. 과감한 투자를 앞세워 SK그룹의 3대 주력 계열사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SK하이닉스는 특히 반도체 시장 전망이 밝은 만큼 보다 공격적인 투자로 시장점유율을 늘려갈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10나노급 D램 양산과 72단 3D 낸드플래시를 성공적으로 양산하기 위한 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화학은 2011년(2조8188억 원) 이후 5년 만에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9.2% 증가한 1조9919억 원이었다. 특히 기초소재 사업 부문은 계절적 비수기 속에서도 영업이익이 80% 가까이 증가한 깜짝 실적을 보였다. 석탄 가격 상승으로 석탄을 원료로 하는 중국산 폴리염화비닐(PVC) 원가가 상승해 반사이익도 얻었다.
○ 기대감 속 긴장의 끈 안 놓는 재계
전자업계는 초장기 호황을 뜻하는 ‘슈퍼사이클(Super Cycle)’에 진입한 반도체를 앞세워 올해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신기술이 모두 고성능 반도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수혜 기업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장중 한때 ‘주가 200만 원’ 고지를 밟은 것은 ‘갤럭시 노트7’ 단종과 ‘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 악재를 모두 극복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차기작인 갤럭시 S8로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반등도 자신하고 있다. 증권사들도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올려 잡고 있다. 크레딧스위스는 이날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주가를 종전 240만 원에서 265만 원으로 올려 잡았다.
LG화학도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물량 증대 등으로 올해 전망이 밝다.
일부 업종은 지난해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지만 부진한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이 과제다. 기아차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 8.1%였지만 이후 매년 7.5%, 6.7%, 5.5%, 4.8%로 낮아지다가 지난해는 4.7%로 내려갔다. 차는 많이 팔고 있지만 판촉비용 등 쓰는 돈이 많아 이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는 광고 매출에 의존하는 사업 포트폴리오 편중이 부담이다. 지난해 네이버의 광고 매출액(2조9670억 원)은 3조 원에 육박했다. 회사 전체 매출 중 약 74%가 광고에 의존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네이버의 광고 매출은 총 8219억 원에 달해 전체 매출액의 75.8%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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