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인사팀은 다음 달로 다가온 상반기(1∼6월) 대졸 공채 방식을 둘러싸고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왔다. 이미 지난해 말 확정됐어야 할 전체 퇴직 인력과 예산 규모도 정하지 못한 상황. 이 와중에 신규 채용 인력을 확정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총수를 정조준한 특별검사팀 수사에 모든 것이 멈췄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직후 미뤄뒀던 공채 업무를 다시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이상 늦추면 채용 시기를 놓쳐 인재를 다 뺏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필요 인원보다 적게 뽑은 뒤 경력 및 수시 채용을 늘리는 안 등을 논의하다가 아예 기능을 각 계열사로 이관하는 쪽으로 방향이 정리됐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폐지를 앞둔 상황인 만큼 그룹이 공채를 통합 관리하던 기능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공채부터 계열사들은 그룹에 별도로 채용 목표를 보고하지 않고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세워둔 인력수급 계획에 맞춰 알아서 공고를 내면 된다.
재계에서는 그룹이 공채에서 손을 떼면서 전체 채용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통상 그룹 공채 과정에서 그룹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계열사들에 인원에 대한 큰 가이드라인을 그려주는 것이다. 그룹에서 그해 경제 상황과 사회 분위기 등을 총괄적으로 고려해 최소한의 ‘채용인력 마지노선’을 정해주면 계열사들이 이를 맞추기 위해 때로는 필요 이상의 인원을 모집하는 효과가 있었다.
삼성의 경우도 계열사들의 수요만 더하면 연간 신입사원 대졸 공채 규모는 6000∼7000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룹에서 주도해 이를 매년 1만 명 수준으로 키워왔다. 앞으로는 삼성전자 등 돈 잘 버는 주요 계열사에 모자란 채용 인원을 추가로 ‘강제 할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삼성은 앞서 지난해 초에도 그룹 인사팀에서 운영하던 대졸 공채 권한을 계열사들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미 계열사별로 필요한 인력을 그때그때 경력직으로 뽑거나 수시채용으로 충원하는 데다 당시 삼성 내부에서 채용 기수를 중심으로 한 연공서열 문화 폐지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 일환으로 그룹 차원에서 운영하던 신입사원 하계수련회도 지난해부터는 계열사별로 진행하도록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차마 공채 기능까지 계열사에 넘기지 못한 데는 그룹 공채가 도맡아 온 사회적 책임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미래전략실 해체가 예고된 상황에서 결국 삼성의 채용 방식에 영향이 가게 된 셈이다. 재계 1위 삼성이 채용 방식과 인원에 변화를 주면 다른 기업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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