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해변에서 한가로이 쉬는 어부와 마주쳤다. “왜 일하러 안 나갔느냐”는 부자의 질문에 “오늘 몫은 다 잡았다”는 어부의 답이 돌아왔다. 대화는 이어진다. “금쪽같은 시간, 더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면 좋지 않나?” “뭘 하려고?” “나처럼 편안하게 삶을 즐기려고.” “지금 내가 그러고 있는데….”
▷돈을 왜 버는지, 일의 진정한 목적을 돌아보게 하는 우화지만 시대에 맞춰 우화도 달라져야 할 듯하다. 한국의 경우 삶의 질을 높이는 노동시간 단축은 부유층의 특권이 됐다. 그제 KEB하나은행이 내놓은 ‘2017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부자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6시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의 긴 노동시간도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금융자산 10억 원이 넘는 10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부자의 삶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월평균 소득 2326만 원에 매달 970만 원을 쓴다. 여유시간이 넉넉해 일반인보다 평일 3.5배, 주말은 2배의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골프 예술관람 등 여가활동을 즐긴다. 자녀 결혼비용으로 아들 7억4000만 원, 딸은 6억2000만 원을 쓴다. 보유 부동산은 시가로 평균 45억 원. 손주 사랑도 지극해 자산 증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으로 부를 대물림했듯이 상속·증여 수단으로 부동산을 선호한다.’
▷한국 부자들과 달리 서양 부자들은 여가시간이 줄어들었다. 예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부자들이 왜 가난한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는지를 다룬 적이 있다. 19세기에는 긴 노동시간을 통해 그가 얼마나 가난한지 알 수 있었다면, 21세기 들어 부자가 가난한 이들보다 더 오래 일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경우 일자리를 찾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의 여가시간은 늘어난 반면 성공적인 직장인들의 경우 긴 시간 일하는 대신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노는 시간이 많다는 게 실업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한국의 부자와 서양의 부자,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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