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계절이다. 10일로 가동 전면중단 1년을 맞이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북녘 하늘로 날아가는 철새만 응시하고 있다. 123개 입주기업과 수천개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대체 일터를 찾지 못했다. 특히 공단 중단에 비선 실세 개입 등 미확인 소문으로 기업인들은 황망한 모습이다. 2004년 공단 시범단지 입주기업 분양 심사위원이었던 필자 역시 속이 타는 기업인들의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한 합작 공단 가동은 북한의 핵 개발로 12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단 내부는 남북한 합작 공단의 장점이 점차 부각됐지만 외부 여건은 5차례의 핵실험으로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공단 기업인들이 희망하는 진정한 봄날은 세 가지다.
우선 공단 재가동이다. 재가동은 북한 근로자의 임금 수입이 4, 5차 북핵 실험 이후 채택된 2차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와 상충되는지가 핵심이다. 결의 2321호는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관련 활동의 자금줄이 될 수 있는 외화 획득 채널을 차단하고, 북한 정권의 외화 수입 규모를 실질적으로 최대한 제한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연간 1억 달러 규모의 대량 현금(bulk cash)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전용되지 않아야 한다. 전용 여부는 북핵이 남북경협과 병행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현재로선 안보리 결의 준수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향후 공단 재개에는 비핵화 진전과 동시에 북한 근로자들에게 임금 직불이나 쌀 및 기타 물품으로 지급하는 보완책이 불가피하다. 북핵 선제타격을 거론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도 재개에 걸림돌이다. 향후 한미 간에 긴밀한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북한이 가동을 중단했던 2013년은 남북한의 합의만으로 재개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복잡해졌다.
둘째, 충분하고 적정한 보상에 대한 정부와 기업 간 이견 여부다. 기업인들은 가동 중단이 국가의 통치행위라면 정부의 충분한 피해 보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조사 결과 피해액은 7779억 원으로, 지난해 말 기준 4888억 원을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기업인들은 1조5000억 원+α의 피해를 주장한다.
현재 피해 금액을 둘러싼 핵심 이견 중 하나는 유동자산과 고정자산의 인정 비율이다. 유동자산의 피해 보상액은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지불로 연결된다. 유동자산의 불충분한 보상은 12만 명으로 추정되는 협력업체의 피해로 전가된다. 충분하고 적정한 보상에 대한 기준은 시각에 따라 상이한 만큼 정부와 업체 간의 모범답안을 작성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개성의 경험을 살리는 대체공단 가동이다. 국내에서 대체공단을 가동하는 것은 정부의 혁신적인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일부 기업은 베트남 등에 해외 대체공장을 검토했지만 은행 대출 및 물류비용 등의 난관으로 활로를 찾지 못했다. 손재주가 좋은 월급 150달러의 근로자, 2시간의 물류거리, 저렴한 토지비용을 구비한 공단은 국내에서 견적을 낼 수 없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투자를 강조하며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의 팔을 비틀고 있다. 개성 기업들의 한시적인 국내 대체공단 가동은 일자리 창출과도 직결된다. 경제성이 미흡하겠지만 제3국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정부의 보조금을 통한 임금 지원 등 대체공단 대책이 검토돼야 한다. 관련 예산은 통일비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2년간 기업들의 남북한 합작 공단 경험은 통일시대에 대비한 귀중한 무형자산이다. 개성공단은 북한 근로자들이 자본주의를 학습한 소중한 기회였다. 초코파이 간식 맛에 충격을 받은 북한 근로자 5만4000명을 고용한 체험은 통일 이후 북한 기업들을 가동하는 데 필수적인 소프트웨어다. 공단 기업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은 통일자산의 낭비다. 공단 중단 이후 평양 암시장에서 한국산 초코파이가 사라진 것은 북한의 변화에 있어 아쉬운 일이다. 한반도 통일 시점은 10개 정도의 개성공단이 북한 전역에서 가동되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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