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은행권 가계대출
주택대출도 34개월만에 증가폭 최소… 규제강화-부동산 열기 식은 영향
당국 여신심사 확대 등 고삐 더 죌듯
지난해 월평균 5조 원 이상씩 불어나던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난달 500억 원대로 뚝 떨어졌다. 대출 금리가 치솟고 있는 데다 정부의 잇단 대출 규제 강화로 돈 빌리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고 있는 부동산 시장 분위기도 대출 수요를 위축시키고 있다.
가계대출 급증세에는 브레이크가 걸렸으나 본격적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접어들면 부채의 질적 구조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권의 가계대출(한국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708조174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585억 원 늘었다. 지난해 12월 증가액(3조4151억 원)에 비해 증가세가 대폭 꺾였다. 또 2014년 1월(―2조2000억 원)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폭이다. 통상 1월은 대출 비수기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2년간 1월에도 2조 원 안팎으로 가계대출이 불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모습니다.
특히 그동안 가계대출 급증세를 이끌던 주택담보대출에 제동이 걸렸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533조7320억 원으로 한 달 새 8015억 원 늘었다. 2014년 3월(8000억 원)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증가폭이 가장 작았다. 작년 12월(3조5935억 원)을 포함해 지난해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월평균 4조6400억 원씩 급증했다.
정부는 가계부채 급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 2월 수도권을 시작으로 주택담보대출 소득심사를 깐깐히 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에도 아파트 신규 분양 물량이 쏟아지고 부동산 호황이 계속되면서 대출 급증세는 이어졌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8·25 가계부채 종합대책’부터 청약 규제를 강화한 ‘11·3 부동산 대책’ 등이 잇달아 쏟아진 지난해 말부터다. 금융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주택시장 열기가 꺾이면서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는 4500여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줄었다. 여기에다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로 대출 금리마저 뛰면서 대출 수요가 움츠러들었다.
앞으로 금리 상승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부동산 시장 전망도 밝지 않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예전처럼 급속하게 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금융당국은 올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등 대출 고삐를 더 조일 방침이다. 이미 올 초부터 아파트 잔금대출에 대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했고, 3월부터는 상호금융권에도 이를 도입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주택 거래가 줄기 시작했고 올해 집값 하락도 예상되는 등 주택시장이 위축돼 작년처럼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이 양적으로 급증하는 문제의 불길은 잡았지만 질적 구조는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송 실장은 “집값이 하락하면 자동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올라가 한계 상황에 몰리는 대출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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