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방송사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힐링 송’을 조사했더니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1위를 차지했다.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에도 삽입돼 국민가요 반열에 오른 노래다. 이 곡이 한국인의 가슴을 위로해 주는 건 노랫말처럼 국민들이 그동안 너무 힘든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 원래부터 걱정이 많았던 것 같진 않다. 경제개발 초기인 1964년 말 동아일보 국민 여론조사에서 ‘살림살이가 앞으로 나아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26%만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간신히 넘는 빈국의 국민인 데도 잘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국민소득이 250배 이상으로 늘어난 지난해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45.4%로 훌쩍 올라갔다. 53년 전의 가난한 한국인보다 요즘 부자 한국인들의 걱정이 더 많은 셈이다.
1960년대 중반 경제개발 초기엔 가난했어도 마음까지 빈곤하진 않았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이 꿈틀거렸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즘엔 그런 자신감과 확신이 깨졌으니 2%대 경제 성장률이 당연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국민들의 걱정이 많은 나라가 잘될 리 없다. 불안하면 돈은 달아난다. 있는 사람이 지갑을 닫고 투자와 소비는 쪼그라든다. 밑바닥 서민들의 일자리도 날아간다. 한국은행이 1990년대 이후 일어난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6번의 정치적 사건의 파장을 분석했더니 평균 6개월 이상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쳤고,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리더들이 서민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시국을 안정시키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촛불과 태극기 광장의 불안과 혼란을 자극해 권력을 쥐려는 이는 보여도 불안한 미래를 국민들보다 한발 앞서 걱정하고 대안을 함께 마련하려는 정치인이 많지 않으니, 국민들은 그게 또 걱정이다.
중동의 두바이는 아라비아 반도 사막 끝의 작은 어촌이었다. 20세기 초 소금(Salt), 태양(Sun), 모래(Sand)밖에 없는 ‘3S’의 불모지로 불리다가 석유가 나면서 졸지에 부자 나라가 됐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은 많지 않았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낙타를 탔다. 나는 벤츠를 타지만 증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수도 있다.”
두바이의 지도자였던 라시드 빈 사이드 알막툼은 석유 고갈이라는 ‘예정된 미래’를 국민들보다 앞서 고민하고 대안을 준비했다. 중동에서 상상하기 힘든 과감한 규제 개혁과 시장 개방으로 해외 자본을 불러오고 석유가 없는 두바이를 마천루의 천국, 국제 교역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의 결단과 실행이 없었다면 두바이 국민들은 ‘다시 낙타를 타고 다녀야 하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만 없어지면 경제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정치 중립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개혁한다면 성장 잠재력이 발휘될 겁니다.”
얼마 전 별세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생전 마지막 공식 행사에서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노래로만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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