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의 방향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을까. 전투기 조종사들이 구름 속에서 회전 훈련할 때 그런 체험을 한다. 본인의 감각으로 분명 하늘이라고 판단되는 방향을, 계기판은 땅이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순간적인 판단이 목숨과도 직결된 찰나, 조종사들은 조종간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까.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조종사들은 평소 ‘계기판을 믿으라’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기저귀와 분유가 또 논란이다. 피앤지의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기저귀에서 맹독성 화학물질 다이옥신이 검출됐고, 압타밀 분유에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세슘이 나왔다는 소식 때문이다. 두 가지 모두 아기가 쓰는 제품이어서 더 민감한 반응들이 나왔다. 맹독성 화학물질, 방사선의 이미지와 아기 얼굴을 떠올리면 직관적으로 공포심이 생긴다.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유해물질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해물질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오랫동안 과학기술을 축적해 왔다. 다이옥신의 경우 현행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에 허용 기준치가 쇠고기는 지방 1g당 4.0pg TEQ이다. 피코그램(pg)은 1조 분의 1g이고 TEQ는 환산된 ‘독성등가값’이라는 의미다. 성인의 경우 다이옥신이 1조 분의 4g 정도 들어 있는 쇠고기를 하루 1인분(약 200g) 정도로 평생(70년)을 먹어도 해롭지 않은 기준값이다. 돼지고기는 2.0pg이고, 닭고기는 3.0pg이다.
문제가 된 기저귀에서 검출됐다고 알려진 양은 g당 0.000533pg TEQ이다. 아직 아기 피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그렇다고 위험성을 추정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다이옥신이 지방에 축적돼 있기 때문에 음식물에 의해 90% 이상 유입된다고 보고 있다. 1∼3%는 호흡에 의한 것이다.
압타밀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밝힌 세슘-137의 검출량은 kg당 0.697베크렐(Bq)이다.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량(5mSv)을 기준으로 한 국내 기준치 370Bq보다 훨씬 낮고, 독일방사성방호협회나 핵전쟁방지국제의학자기구 독일지부가 영·유아용 식품에 적용한 기준치인 4Bq과 비교해도 낮다.
환경운동연합은 2012년 일동후디스 산양분유에서 세슘이 0.391Bq 검출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검출된 세슘의 양이 안전기준치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극소량이라며 환경운동연합이 위자료 8000만 원을 일동후디스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14년 양측의 화해로 종결됐다.
기업을 일방적으로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전투기 조종석의 계기판 같은 ‘기준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의 차이라고 했다. 신뢰는 사회의 중요한 자본이라는 것이다.
기준치를 근거 없이 버리는 것은 지금까지 축적해 온 인류의 과학지식을 버리는 것이다. 과학지식이 완벽하지는 않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는 ‘최선’이다. 기준치를 저버리는 것은 인간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마련해 둔 ‘허용 안전 기준’라는 제도도 무시하는 것이다. 세슘의 위험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돼 기준치를 바꿀 필요가 있는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기존의 기준치는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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