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현금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섰다. 초저금리와 대규모 돈 풀기 정책이 지속된 여파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는 가계와 기업이 늘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화폐 발행 잔액은 103조5100억 원으로 지난해 말(97조3800억 원)보다 6조1300억 원 증가했다. 화폐 발행 잔액은 한은이 공급한 화폐 중 환수되지 않고 현재 시중에 남아 있는 현금의 규모를 뜻한다. 화폐 발행 잔액이 100조 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말 30조 원을 넘어선 화폐 발행 잔액은 2010년 40조 원, 2012년 50조 원, 2014년 70조 원을 돌파하는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금 증가세를 주도한 건 5만 원권이었다. 지난달 말 5만 원권의 발행 잔액은 79조9700억 원으로 전체 화폐 잔액의 77.2%를 차지했다. 작년 한 해 시중에 찍어낸 5만 원권은 23조 원으로 2009년 첫 발행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달에도 5만 원권은 4조2000억 원 늘었다.
현금뿐 아니라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합친 넓은 의미의 통화(M2) 또한 지난해 말 2342조6200억 원(평균잔액·원계열 기준)으로 전년보다 159조7100억 원 증가했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 보여주는 지표들은 최악의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2010년 24배 수준이던 ‘통화승수’는 지난해 12월 16.8배로 떨어졌다. 통화승수는 한은이 공급한 돈이 금융회사 등을 통해 몇 배로 불어나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수치가 낮을수록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돈이 얼마나 빨리 도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유통속도’는 지난해 3분기(7∼9월) 0.69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내외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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