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국들, 파격적 혜택 주며 기업유치 나서는데
한국은 반대로 기업들 해외 내몰아
파이 키우기 외면한채 남의 몫 뺏어 배불리는 지대추구 사고 벗어야
이우영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왜 어떤 나라는 가난하고, 어떤 나라는 잘사는가?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작년 말 출간한 정병석 교수의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에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경제 제도, 그리고 당시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들의 행적에서 교훈을 찾았다.
1866년 조선에 도착한 독일 무역상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2년 동안 세 번이나 서해안을 답사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가 보기에 조선은 대륙에 면해 유리한 지리적 여건, 온화한 날씨, 비옥한 토지 등 잘살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에도 백성이 가난한 결정적 이유가 정부의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정치 체제에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청나라 엘리트 관료 마건충도 조선이 옛것에 얽매였기 때문에 국가가 약해지고 재물이 부족한 것이며, 상업의 침체는 정부의 정치적 무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임진왜란 이후 세 차례 파견된 조선의 통신사들에게는 전란 중에 일본에 잡혀간 조선인, 이른바 피로인(被擄人)들의 송환 문제가 핵심 외교 이슈 중 하나였다. 적어도 6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피로인들은 10년, 20년이 지나 고국에서 온 사절들이 귀국을 종용해도 대부분 귀국을 꺼렸다. 특히 도자기 장인이나 인쇄 기술자들은 아예 귀국할 뜻이 없었다. 도자기 장인들은 사무라이 같은 신분으로 특별한 우대를 받았고, 모노즈쿠리라 할 수 있는 장인 기업가 정신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정책적 지원도 충분했다. 미개한 문명국가였던 일본은 이미 시장경제 원리를 개인과 산업에 적용해 국가 부흥의 기반이 되는 제도를 실천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의 제도는 상공업이 억제돼 자본이 축적될 기회가 적었다. 관리와 양반 계층의 착취와 견제로 부를 축적했다고 소문이 날 경우, 자칫하면 재산을 빼앗길 위험이 있다는 인식이 있어 백성들은 모험을 무릅쓰고 재산을 축적할 동기가 없었다. 불행하게도 경제 관념이 없었던 조선의 지배계층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아 자신의 몫을 늘리는 착취적인 지대추구(地代追求) 행위만 일삼았던 것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의 일부라도 구미로 왔으면 좋겠다.” 작년 말 청문회에서 모 국회의원이 던진 말이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구미 산업단지는 2016년 전년 대비 수출 감소 19%, 2100여 개 업체의 가동률은 80%에 불과하다. 과거의 활기와 역동성은 찾아볼 수 없다. 세계 10개국에 34개 공장을 가동 중인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이고 굴지의 국내 대기업들이 안방을 외면하고 해외에 살림을 차리는 현상이 그간 개방화, 현지화 조류에서 우리만의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버락 오바마 정부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리메이킹 아메리카’ 슬로건은 스마트 매뉴팩추어링 기술 발전과 더불어 세계 각국에 흩어졌던 생산기지의 본국 회귀, 즉 리쇼어링(Reshoring)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설비투자 세제 혜택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해외 공장 이전 비용도 최대 20%까지 지원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적인 세제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법인세율을 대폭 인하할 방침임을 예고했다. 제조업 살리기 정책이 시작된 이후 유턴을 결정한 대기업이 100곳이 넘는다.
작년 11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30%인 법인세율을 2020년까지 17% 이하로 낮추겠다는 의지를 발표했다. 기업 유치에 도움이 되는 규제는 대폭 풀고 포용적 경제 정책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려는 경쟁은 독일, 중국,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는 ‘클레멘티아’, 즉 관용과 열린 사고, 법과 제도가 움직이는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정치 논리보다는 경제 논리를 우선시하여 세계를 경영하는 지혜와 리더십으로 천년 강국을 유지하였다. 역사적으로 파이를 키우는 데는 무관심하고 착취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진 국가는 정체되거나 몰락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정치권, 대기업 노조, 법조계, 언론계 및 교육계 등에 만연한 ‘지대추구적 사고’를 바로잡는 일이다. 반(反)기업 정서, 과다한 규제, 경직적인 노동시장 때문에 국내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인재도 기업도 다 떠날 것이다. 조국 해방과 함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이, 해외로 나갔던 우리 기업들도 리쇼어링의 봄을 맞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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