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경제 데이터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기관이다. 특히 통계 관리는 통화 신용과 외환 정책, 금융 안정, 지급 결제 시스템 관리 등을 맡는 한은에서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이 때문에 한은의 발표 수치는 각종 경제 정책을 입안할 때 중요한 판단 근거이자 기준이 된다.
하지만 9일 이런 권위를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은은 이날 오전 9시 ‘저축은행의 1월 가계대출 증가액이 9775억 원’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12월 증가분(4378억 원)보다 배 이상으로 많은 데다 역대 최고치였다. 사실이라면 가계부채 관리에 공을 쏟아온 정부 정책에 허점이 드러나는 셈이어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은은 대출 증가 원인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큰 일은 이날 오후 4시께 터졌다. ‘증가액이 9775억 원이 아니라 5083억 원’으로 수정된 것이다. 7시간 만에 절반 가까운 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기초 자료를 만든 저축은행중앙회가 가계대출에 자영업자나 농업인이 빌리는 ‘영리 목적의 가계대출’까지 포함시키면서 금액이 늘어났지만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실수였다.
게다가 저축은행중앙회는 올해 1월 이전에 대출이 이뤄진 ‘영리 목적의 가계대출’을 모두 1월 증가분에 합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9775억 원도 틀린 수치였고, 5083억 원도 실상을 제대로 반영한 수치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중앙회 측은 “1월 영리 가계대출 증가분은 미미할 것”이라며 “정확한 수치는 좀 더 계산을 해봐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변명만 늘어놨다. 한은도 “저축은행중앙회에 해당 수치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는 군색한 해명을 내놨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그만큼 신중하고 정교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현안 과제다. 잘못된 통계가 버젓이 만들어지고, 이런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정부 정책을 기대하긴 어렵다. 금융시장이 발전하면서 플레이어가 많아지고 데이터도 폭증하고 있다. 한은의 통계 관리 역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는다. 한은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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