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빚의 시대에 빛을 보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3일 03시 00분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바야흐로 가계부채 1300조 원 시대다. 인류가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부채(debt)는 어느 시대에나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돼 왔다.

인류의 오랜 경전(經典)인 성경(로마서 13장 8절)에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인류학 대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도 빚과 관련한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놨다. 자신의 저서 ‘부채 그 첫 5000년’에서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중국 인도에서 주화를 만들면서 시작한 부채의 계량화가 빚을 인간사회 최대 위협 요인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세력이나 서민계층 등 모든 이들은 빚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과거 유대인은 오늘날의 사회안전망에 비견할 수 있는 시스템인 ‘희년(禧年·Jubilee)’ 제도를 운영했다. 2000년 전 로마시대에 카틸리나와 키케로가 원로원 집정관으로 선출되기 위해 로마 시민의 부채 탕감을 대대적인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빚을 관리하려는 노력은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는 빚이라는 의미의 ‘크레디트(credit)’와 체제라는 뜻의 접미사 ‘크라시(∼cracy)’를 합성한 ‘크레디토크라시(creditocracy)’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부채는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심상치 않아 보인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까지 언급될 정도이며 다중채무자 역시 위험을 안고 있다. 금융당국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금융기관 세 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383만 명에 달하고 이들이 보유한 부채 규모 역시 430조 원에 이른다. 다중채무자 10명 중 8명이 연간 소득 5000만 원 미만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이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미국발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정된 상황에서 다중채무자의 이자 부담은 큰 문제다. 이는 부실대출로 이어져 우리 경제를 옥죄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빚을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는 134만 가구에 이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만 상승해도 한계가구는 143만 가구로 늘어난다. 지금이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된 지원을 수요자 관점으로 전환하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상환 능력이 없는 다중채무자라면 채무 조정 등과 같은 구조조정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재무컨설팅 및 서민금융 등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프리워크아웃 제도로 금융회사 채무를 구조조정하거나, 여러 금융 공공기관에 분산된 부실채권을 통합해 채권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채무 조정 등을 통해 재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진행할 때는 재산과 소득을 포함한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상환 의지를 가진 이들을 선별적으로 지원해 금융질서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이러한 노력이 요즘처럼 깜깜한 빚의 시대에 다중채무자에게 희망의 빛을 돌려주는 소중한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빚#금융#대출#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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