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구 권위자 장병탁 서울대 교수
“가전 경쟁력 월등한 국내 대기업, SW 스타트업에 투자해 혁신을”
9일 인공지능(AI) 기술 연구가 진행 중인 서울 관악구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 409호. 거실과 부엌을 갖추고 그 안에 식탁, TV, 소파, 싱크대, 냉장고까지 두고 있는 연구실은 가정집에 더 가까워 보였다. 온갖 전선이 뒤엉킨 덩치 큰 로봇장비를 예상했던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서울대 장병탁 컴퓨터공학부 교수(54·사진)가 설명했다.
“산업 현장에서 전문 인력을 대체하는 수준에 이른 AI 기술의 다음 목표는 가전제품과의 결합입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AI가 인식할 수 있도록 연구실을 꾸민 겁니다.”
장 교수 연구팀은 ‘워킹맘’을 대신해 유치원·초등학생 아이를 돌보는 육아로봇을 개발 중이다. 단순히 아이를 잘 돌보는 수준을 넘어서 아이와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공부도 직접 가르치는 것이 목표다. AI 기술의 미래는 의사가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엄마가 될 수 있느냐에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 AI 기술 분야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우려가 쏟아졌지만, 장 교수는 일상 제품과 네트워크가 결합하는 4차 산업혁명기엔 국내 기업이 판세를 뒤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기업의 AI 기술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전제품 제조업 분야에선 결국 국내 기업이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AI를 발 빠르게 접목하면 4차 산업혁명기의 변화 흐름이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뒤처지면 만회하기 힘들 겁니다.”
국내 AI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장 교수는 주로 뇌인지과학 기반의 머신러닝을 연구해왔다. 국내서 AI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전무하던 1986년에 자연어 처리(인간 언어를 컴퓨터에 인식시키는 작업)로 논문을 쓰면서 AI 연구 분야에 들어섰다.
그는 국내 AI 사업화가 현재 중대시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업이 소프트웨어 분야 스타트업을 활발히 인수합병해 빨리 혁신에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프트웨어와 혁신 아이디어를 재빨리 수혈해 대기업의 기술력으로 제품을 내놓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대기업이 직접 새로운 연구 과제를 개발하는 것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하는 게 더 빠른 혁신의 길”이라며 “일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하청 개발업체 정도로 여기는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의 가치, AI 관련 연구자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문화가 형성돼야 스타트업도 활성화되고 기술 발전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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