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보원]대우조선, ‘先책임 後구조조정’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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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원 KAIST 경영대 교수
김보원 KAIST 경영대 교수
정부는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반 만에 5조8000억 원에 달하는 지원 방안을 다시 내놓았다. 수십조 원의 혈세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낭비돼 왔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반성할 기색이 없다.

한때 세계 시장의 강자였던 대우조선해양은 어떻게 이토록 철저히 망가졌을까. 글로벌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무능과 국내 조선소들 간의 집안싸움 때문이다. 2014년에 이미 조선해양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글로벌 오일메이저들이 설비투자를 대규모 삭감할 때 한국 조선소들은 해양 분야 생산설비를 대폭 확장했고, 저가 수주 경쟁에 뛰어들어 모든 리스크를 일방적으로 떠안는 불평등 계약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들은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거대한 위기의 쓰나미가 닥쳐오자 자신의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렸다. “글로벌 유가가 1, 2년 안에 회복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조선산업이 우리 경제의 효자 노릇을 해왔다”고 항변했다.

1조 원의 이익이 나면 자신들을 위해 돈 잔치를 벌이고, 10년 주기로 10조 원의 공적자금을 국민으로부터 갈취하다시피 가져가는 기업이 어떻게 효자인가. 도둑만도 못하다. 위기의식이 없으니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혁신 요구를 한쪽 귀로 흘려보낸 것은 당연하다. 뜨거운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무기력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은 있다. 인류는 바다를 통한 국제 교역과 이동을 멈출 수 없으며, 조선해양산업은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대우조선해양과 한국 조선해양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정부와 국책은행은 정책적 무능과 실패에 대한 반성과 진솔한 참회를 하라. 둘째, 5년, 10년 후 글로벌 조선해양산업의 장기 비전을 정립하라. 셋째, 목표와 현실의 갭(gap)을 정의하고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라. 앞서 예측한 글로벌 조선해양시장에서 우리의 목표 점유율을 결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설비 및 장비, 인력과 재원 등을 파악한 후 현재 수준과 비교함으로써 각 부문에서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이때 회사 부분매각과 인수합병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기술혁신 갭 분석을 통해 조선해양산업이 기술혁신집약 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전략을 구축하라. 우리 조선해양산업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기술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다. 다섯째,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대량 실업을 야기하고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 과정에서 선량한 피해자를 위한 생활지원과 교육훈련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진정한 고통 분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라. 정부와 기업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 때문에 생긴 실패의 고통을 노동자와 서민만이 온몸으로 짊어져야 하는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없다. 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대우조선해양의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우조선해양을 뼈아픈 희생 없이 온전히 살릴 수 있는 기적은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은 구조조정의 고통 분담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지, 모든 이해당사자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희생을 감수할 의지가 있는지,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를 정확히 해석하고 대처할 역량을 갖췄는지에 달려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죽어야 산다. 대우조선해양은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 경제의 자화상이다.
 
김보원 KAIST 경영대 교수
#대우조선해양#조선해양산업#필사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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