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환기를 맞아 로봇기술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현장 연구자를 비롯한 국내 로봇 분야 전문가들은 변화의 핵심이 ‘융합’이라고 설명한다. 각종 소프트웨어(SW)와 센서 기술, 정보통신기술(ICT) 등이 기계공학과 접목되는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로봇기술의 적용 범위도 이에 맞춰 급속도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업용 로봇에 이어 ICT와 결합한 서비스형 로봇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체 로봇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로봇과 융합하는 센서·SW 기술
23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로봇미디어연구소. 이곳에서 연구하는 로봇기술은 재활과 수술을 돕는 장착용 기계장치, 근육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스마트 센서, 인공지능(AI)과 차세대 미디어 연구 등으로 폭이 넓다.
이날 한 연구실에선 몸에 부착하는 센서 연구에 한창이었다. 손과 허리에 부착하는 센서는 근전도(근육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전류를 기록한 그래프)를 측정하는 장비. 이를 연구원이 장착하자 무선신호로 연결된 모니터에는 사용자의 근육조직 이미지가 나타났다. 어떤 근육을 움직였는지, 얼마나 힘을 줬는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원거리에 위치한 로봇이나 가상현실 속 아바타가 사용자의 동작을 실시간으로 따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람 몸을 모니터링 하는 기술만으로도 상업화 가능성이 있어 운동선수의 훈련과 재활훈련에 적용할 수 있는 SW도 만들고 있다.
네트워킹 기술과의 활발한 접목도 로봇연구 과제에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VR) 체험 장비를 착용하고 네트워크상의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로봇기술의 연구 과제도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ICT와 SW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KIST 강성철 책임연구원은 “로봇이란 인간의 육체적, 인지적,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4차 산업혁명기에 로봇기술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체에 장착하는 웨어러블 장비와 센서 기술이 발달하고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AI 등 SW 기술과 결합하는 사례가 확산되며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ICT와 융합하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로봇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종합기술로서 거기에는 하드웨어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SW와 센서 기술이 녹아 있다는 설명이다.
과학자들은 로봇이 우리가 맞이할 ‘개인 맞춤형 산업시대’,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로봇기술이 유망해질 것이라 예측한다.
KIST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은 대형 산업 현장에서 생산장비로 쓰이는 ‘로봇팔’을 사람 팔 정도 크기로 소형화하는 연구에 분주하다. 생기원은 두 손으로 기계부품을 조립할 수 있는 산업용 로봇을 개발 중이다. 개인 맞춤형 생산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협력 로봇’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노인과 1인 가구 증가세에 따라 장착형 로봇의 활용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의수나 의족 등에 로봇기술을 적용하는 과제도 현재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 글로벌 로봇 패권 경쟁 가열
로봇기술의 진화와 더불어 관련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2025년 세계 로봇 시장 규모가 669억 달러(약 74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5년 로봇 시장 규모(269억 달러)와 비교하면 10년 만에 3배 가까이로 증가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ICT와의 결합이 더 빨리지는 가운데 서비스형 로봇이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급성장이 예상되는 로봇 시장을 놓고 글로벌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과 큰 내수시장을 앞세워 이 분야를 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이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데다 로봇 분야 벤처기업 창업도 활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로봇 강국인 일본도 2015년 ‘로봇 신전략’을 발표하고 서비스용 로봇 육성을 위한 지원 예산을 2015년 600억 엔(약 6060억 원)에서 2020년까지 1조2000억 엔(약 12조1202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한국도 로봇 분야 강국으로 꼽힌다. 세계 4위의 로봇 생산국으로, 로봇 밀도(고용인구 1만 명당 설치 로봇 수)는 478대로 세계 1위 수준이다. 자동차와 IT를 중심으로 제조업 생산 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비스형 로봇 분야는 취약하다. 핵심 기술력은 일본에 밀리고, 시장 규모에선 중국을 따라잡기 버거운 상황. 로봇 관련 스타트업도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생기원 이동욱 로봇그룹장은 “해외에선 일본의 소프트뱅크, 미국의 아마존이나 구글 등 대기업이 서비스 로봇 초기 시장을 만들어 가는데, 우리는 발만 담그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기업이 과감한 리더십을 발휘해 로봇도 서비스 플랫폼화하고 관련 생태계를 만들어야 SW 등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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