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다양한 CSR 활동 가운데서도 기부금은 CSR의 가장 구체적 척도로 꼽힌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인들이 기업의 기부금 규모를 결정하는 것일까.
고려대와 KAIST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사회적 관심이 기부금 출연 형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은 비상장회사에 비해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재벌로 통칭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들은 공적 감시에 노출돼 있다.
연구팀은 2000∼2014년 국내 기업들의 손익계산서에 나타난 기부금액을 분석했다. 실증분석 결과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중은 상장기업들의 경우 8.6bp(1bp는 0.01%)인 반면 비상장기업들은 7.5bp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기부금 비중은 10.1bp,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들의 기부금 비중은 7.5bp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이 비상장기업에 비해, 그리고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큰 규모의 기부금을 출연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더불어 연구팀은 재벌그룹 내 상장 계열사들에서 ‘소유·지배 괴리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기부금을 출연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소유·지배 괴리도’는 지배주주 일가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지분보다 얼마나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지를 나타낸 지표로, 괴리도가 높을수록 의결권 대비 지분이 적다는 의미다.
본 연구는 계열사들이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자 거래를 통해 소수의 지배주주에게 부를 이전해주는 이른바 ‘터널링(tunneling)’ 현상이 기부활동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 중 지배주주의 보유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장 계열사는 거액의 기부금을 출연하고, 보유 지분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상장 계열사는 소액을 출연한다. 단, 거액 기부로 얻는 ‘사회공헌기업’ 이미지 효과는 비상장 계열사도 함께 누린다. 이른바 ’기부금 무임승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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