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개국 돌며 깨달았죠…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는 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1일 03시 00분


[창간 97주년/2020 행복원정대/청년에게 희망을]<1> 2017 청년에게 행복이란
29세 김민우 씨의 행복원정기

20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여행 테마 카페에서 김민우 씨가 지구본에 턱을 괸 채 미소 짓고 있다. 김 씨는 4월 3일 툰드라 지대로 또 한 번 ‘행복 여정’에 나선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0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여행 테마 카페에서 김민우 씨가 지구본에 턱을 괸 채 미소 짓고 있다. 김 씨는 4월 3일 툰드라 지대로 또 한 번 ‘행복 여정’에 나선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015년 5월 입사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텔레비전 감광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1년을 버티며 정규직 타이틀도 얻었다. 하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내 꿈’이 들어설 틈은 없었다. 중학교 때 장래 희망에 ‘세계일주 탐험가’라고 썼을 때 어른들은 “그건 돈이 안 된다”고 말했다. ‘상급학교 진학-취업-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인생의 모범 답안을 적당히 따라가라는 현실적 조언이 쏟아졌다.

대학에선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적성에 그다지 맞지 않았다. 졸업 후 간신히 일자리를 잡았다. 이대로 직장생활을 유지하면 큰 무리가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력해졌다. 야근을 마치고 녹초가 돼 돌아오면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김민우 씨(29)는 결국 직장을 떠나 중학교 이후 놓아버린 꿈을 찾아 800만 원을 들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512일간 59개국을 떠돌았다.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네팔 인도 등 아시아를 찍고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누볐다. 여행 시작 1개월째인 2015년 6월 강진으로 폐허가 된 네팔에서 행복의 의미에 한발 다가설 수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요. 자식들을 굶기지만 않아도 행복합니다. 소중한 아들 로젠을 평범한 애들처럼 학교에 보내주고 싶어요.”

두 달 전 발생한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으로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네팔 카트만두는 곳곳이 아수라장이었다. 숙소 옆 무너진 건물 곁에선 네 살배기 로젠이 자기 몸보다 큰 삽을 들고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로젠의 아버지 람푸맛 씨는 “매일 열심히 일해도 제자리인 현실이 슬프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를 껴안고 김 씨도 한참을 울었다.

숙소로 돌아와 람푸맛 부자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일주일 만에 40만 원이 모였다. 로젠과 로젠 누나가 교복을 입고 2년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돈이었다.

김 씨는 인도, 일본, 베트남, 아프리카, 터키, 폴란드 등 40여 개국을 돌며 ‘우리는 네팔을 사랑해(We Love Nepal)’라고 외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담은 응원 영상을 만들었다. 1만 원 이상 기부하면 직접 찍은 여행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보내주는 크라우드펀딩도 시작했다. 목표 모금액(250만 원)의 갑절이 넘는 550만 원이 모였다. 김 씨는 지난해 네팔로 돌아와 이 돈으로 로젠이 다니는 학교의 무너진 도서관을 새로 지어줬다.

그가 제작한 세계인들의 네팔 응원 영상은 현지 대표 방송사 ‘칸티푸르TV’의 8시 메인 뉴스 엔딩을 장식했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2017년 1월 26일 김 씨는 6대륙 59번째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세계일주’의 꿈을 좇아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그는 꿈과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 한 몸 추스르기 어려워하던 그가 어느새 나눔의 행복을 전파하는 파랑새가 돼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회식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보았고, 부유하지 않아도 나눌 줄 아는 사람들도 만났다.

김 씨는 최근 여행지에서 만났던 18개국 청년 25명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노르웨이 친구는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포피와 산책하는 시간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에스토니아와 스페인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이라고 했다. 답은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이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김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친구와 치맥을 먹으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값진 경험을 나누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다음 달 3일 그는 또 한 번의 여행길에 오른다. 북극 툰드라 지대에서 개썰매로 300km를 횡단하는 여정이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선 다녀와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 앞으로의 삶이 별로 두렵지 않다는 사실”이라고.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기준의 행복이라도 좋으니 더 이상 도전을 유예하지 마세요. 행복해지기 위해 당장 실천해보세요. 파랑새는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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