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안정의 시대에는 ‘제도’와 ‘시스템’을 중심으로 조직이나 국가가 운영된다. 그러나 전쟁과 혁명의 시기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비전을 제시하고 역량을 발휘해야 혼란과 불확실성을 돌파할 수 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과 구조적 저성장이 만들어내는 극한 환경일수록 사람을 뽑고 육성하는 인적자원(HR) 관리 업무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불황이나 경제적 위기 등 ‘극한 환경’에서 인사 문제를 다룰 때에는 ‘어렵고 절박할수록 직원 교육과 육성이 중요하다’는 주장과 ‘채용과 선발에 그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한다. 직원 교육은 나중 문제’라는 주장이 늘 맞서왔다.
모든 경영학의 이슈가 그렇지만 특히 ‘사람 문제’인 HR에서는 그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221호(2017년 3월 2호) 스페셜리포트를 통해 극한 환경에서의 HR 전략을 제시했다. DBR는 이 리포트를 통해 극한 환경에서 기업들이 적절한 HR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채용과 육성 가운데 어디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상반된 주장을 자세히 소개했다. 채용이 중요하다는 김광현 고려대 교수의 주장과 육성이 중요하다는 이찬 서울대 교수의 논지를 요약해서 싣는다.
○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선 ‘채용’이 답이다
보통 기업들은 경기 침체기 때 채용에 상대적으로 많은 신경을 쓰는 반면 경기 호황기에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 불황기에는 노동시장의 고용 조정이 많아져 유능한 인력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기업들도 여유 자원이 많지 않기에 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호황기에는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데다 기업 내부에도 인력 육성에 투자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채용보다는 ‘육성’과 ‘교육’이 더 중요한 과제로 부상한다.
경기 상황 외에도 채용이 육성보다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업은 채용한 직원을 대상으로 가치, 직무, 리더십 교육 등을 통해 구성원들의 지식과 기술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이 지닌 성격과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또 아무리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육성 인프라를 갖춰도 원석이 좋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거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도 있다.
예를 들어 호텔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호텔리어의 경우 외향성이나 친화성 등의 성격,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태도가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교육을 시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바꾸기 힘든 특정 자질과 역량이 중요한 직무에서는 적합한 인재를 엄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저도어 샤프 포시즌스호텔 회장은 “제대로 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며 “포시즌스호텔은 교육이나 육성보다 채용을 더 잘하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특히 교육을 통해 개발하기 어려운 개인적 특성을 잘 갖춘 인재의 채용은 사업의 판도가 극적으로 바뀌는 극한 환경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특정 직무가 사업 경쟁력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거나 기술 발전이 빠른 정보통신산업 등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채용해 이들이 성과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기업의 성장이 가능하다. 장기적인 기업 발전에 중요하니 현재 상황이 어렵더라도 당장의 교육 투자를 줄이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의 하나일 뿐이다. 교육 투자비까지 줄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은 기업들은 인재 육성보다 채용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 교육과 육성이 궁극적인 해법이다!
위기 상황, 특히 극한 환경에서는 육성이나 교육보다 채용과 선발이 중요하다는 입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교육과 육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투자 대비 효과 측면에서 교육과 육성이 채용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먼저 비즈니스 이외의 영역에서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한국시리즈 2연패, 정규시즌·포스트시즌 통합 우승을 한 야구팀 두산베어스는 ‘화수분 야구를 하는 팀’으로 불린다. 1군 선수가 부상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2군 선수가 빈자리를 채워 기량을 120% 발휘해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체계적인 내부 육성 시스템에 있다. ‘베어스파크’라 불리는 2군 전용 훈련장은 국내 특급 선수들을 모두 영입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을 투자해 설립했다. 선수 채용에 중심을 둬왔던 몇몇 팀, 특히 선수 연봉 총액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던 팀이 전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전기차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혁신 기업 테슬라는 전형적으로 채용을 중시하는 기업이다. 테슬라는 뛰어난 인재를 많이 채용해 혁신을 선도했지만 극한 환경 속에서 많은 기업이 유사한 인재를 찾다 보니 몇몇 핵심 인재는 결국 다른 경쟁사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내부에서 충성도 높은 인재를 많이 육성했더라면 테슬라는 좀 더 안정적으로 혁신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극한 환경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발과 채용’만이 답이 될 수 없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선발보다는 육성에 비중을 두면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외부에서 채용한 인재들은 경쟁 기업 등으로 빠져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유연하고 빠른 채용을 하면서 동시에 충성도 높은 직원을 육성하려는 노력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다만 지금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의 교육과 육성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기업 연수원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실시하는 집합교육만으론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직접 현장에서 업무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학습을 진행하는 ‘자기주도형 학습’이 전체 교육의 70%를 차지해야 한다. 또 직장 상사와 동료 등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소셜러닝’이 20%, 그리고 기존 집합교육이 10% 정도를 차지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70 대 20 대 10 법칙’을 통한 인재 육성이 극한 환경에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김광현 고려대 교수 kimk@korea.ac.kr 이찬 서울대 교수 chanlee@snu.ac.kr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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