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펀드 추천-목소리로 송금… IT 중무장 나선 금융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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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길을 묻다]<9> 진화하는 핀테크 서비스

목소리로 계좌번호 조회나 송금, 환전 등 간단히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금융비서 서비스가 늘고 있다.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 UFJ은행에 설치된 휴머노이드 로봇 ‘나오’의 모습. 동아일보DB
목소리로 계좌번호 조회나 송금, 환전 등 간단히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금융비서 서비스가 늘고 있다.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 UFJ은행에 설치된 휴머노이드 로봇 ‘나오’의 모습. 동아일보DB
“계좌 조회해줘.”

스마트폰에 대고 이렇게 말하니 보유 계좌 목록이 계좌번호, 잔액과 함께 화면에 나타났다. “첫 번째 계좌를 보여줘”라고 하자 더욱 자세한 거래 내역이 드러났다. 최근 이체한 조의금부터 체크카드 결제로 빠져나간 돈까지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서비스는 우리은행이 지난달 28일 첫선을 보인 ‘소리(SORi)’다. ‘목소리로 작동하고 반응하는 가상친구(Sound Operate Responding i-buddy)’라는 의미처럼 음성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뱅킹 서비스다. 아직은 계좌번호 조회나 송금, 환전, 공과금 납부처럼 간단한 거래만 지원한다.

우리은행은 소리의 학습 능력을 높여 점차 AI 개인비서처럼 씀씀이가 많아지도록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사용자에게 맞는 투자 상품을 제시하고, 스마트폰으로 서비스를 조회한 뒤 오프라인 영업점에서 이어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사업도 선보인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스마트금융부의 정재욱 부부장은 “소리를 ‘내 손 안의 개인비서’로 점차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 빅데이터, AI 등에 업고 새 서비스

금융권은 전통적으로 변화에 둔감했다. 예대마진이라는 강력한 수익모델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현상유지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금융권의 판을 뒤집어 놓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금융권의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한 것이다. 금융회사들도 빅데이터와 AI 등을 이용한 핀테크(금융+기술) 서비스로 맞불을 놓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와 챗봇이 대표적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사람을 대신해 자산관리와 투자 포트폴리오 등을 제안하는 일종의 AI 금융 서비스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대안을 찾아낸다. 챗봇 역시 다양한 소비자의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을 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사람들의 질문 패턴을 습득해 더 정교한 답변을 내놓는 학습 능력도 갖추고 있다.

고객들도 새로운 서비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신한은행의 펀드 추천 프로그램인 ‘엠 폴리오’는 지난해 11월 첫선을 보였는데, 현재까지 약 15만 명이 이 서비스를 체험했다.

공인인증서와 일회용비밀번호(OTP) 등의 전통적인 은행의 인증수단도 생체 정보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KB스타뱅킹’에 지문 인증 서비스를 도입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도 지문만으로 앱에서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다. 기술과 서비스가 개선되면서 모바일 뱅킹도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인터넷뱅킹 이용 건수 가운데 스마트폰 뱅킹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해킹 등 보안 위협에 대비한 블록체인 기술 등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일종의 디지털 장부를 분산시켜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술인 블록체인은 외부 유출이나 위변조가 어려워 진일보한 보안 기술로 평가받는다. 은행업계와 금융투자업계는 각각 상반기 중으로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박성준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블록체인은 기존 인터넷을 뛰어넘는 제2의 인터넷 혁명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일자리 감소 우려, 낡은 규제 뛰어넘어야

신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서비스와 관련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해 기존 금융회사와 건강한 경쟁과 협업을 자극하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각종 서비스는 금융업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진행한 4차 산업혁명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금융·보험업 종사자 10명 중 8명은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보어드바이저, 챗봇 등이 사람을 대체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도 기존 금융업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시중은행의 직원과 영업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같은 인프라는 급감하고 있다. 2016년에만 은행권 임직원 수가 2200여 명 줄었다. 영업점 수(출장소 포함)도 1년 전보다 175곳 감소했다. ATM 등 자동화기기는 2011년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은행 영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었던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촘촘한 영업망, 끈끈한 조직력 등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을 막는 낡은 제도도 짐이 되고 있다. 당장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했지만 아직 ‘은산분리 완화’에 필요한 은행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 것에 업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박재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들어내는 게 향후 금융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돈보다 정보가 중요한 산업으로 바뀌는 추세에 맞게 금융 규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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