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와 수출이 올해 들어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 경제가 연초부터 기대 이상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국내 탄핵 정국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등 불확실한 대내외 여건으로 올 상반기(1∼6월) 경기침체 양상이 짙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경기가 호전될 모습이 감지되면서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안팎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차기 정부가 당초 우려보다 나은 경기 여건 속에서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그동안 미뤄졌던 산업구조조정 등을 정권 초반부터 소신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 수출·내수·기업실적 ‘트리플 호조’
5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KDI는 매년 5월 말 발표하던 상반기 경제전망을 이르면 조기 대선 전인 이달 말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지난해 말 내놓은 2.4%보다 소폭 상향 조정할지를 두고 지표 분석에 들어갔다.
KDI가 성장률 전망치를 높여 잡는 것은 최근 수 년간 없던 일이다. 경기 회복에 대한 정부와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의 3대 축으로 꼽히는 ‘가계소비, 수출, 기업실적’이 올 들어 모두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국 수출액은 489억 달러(약 54조8000억 원·통관액 기준)로 1년 전보다 13.7% 늘었다. 지난해 11월(2.3%) 이후 5개월 연속 증가세다.
수출 증가에 힘입어 경상수지 역시 2012년 3월부터 60개월 연속 최장의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상품, 서비스를 포함한 경상수지 흑자는 84억 달러(약 9조4000억 원)였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던 내수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점도 고무적이다.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액은 2월 기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늘어 지난해 10월(4.2%) 이후 4개월 만에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외 수요가 모두 살아나면서 상장기업들이 올해 1분기(1∼3월) 역대 최대의 실적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41조5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4% 늘어난 규모다.
주환욱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소비의 경우 아직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 힘들지만 수출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경기에 분명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 “산업 활력 되살려야 경기 회복 본궤도”
다만 기업의 투자와 생산활동은 여전히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제조업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산업계와 정부 당국의 우려다.
2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0.9%로 전달(74.2%)보다 3.3%포인트 줄었다. 광공업생산 역시 이 기간 3.4% 감소했다. 내수와 수출이 늘고 있음에도 기업은 생산을 줄이는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증가한 내수·수출이 기업들이 그간 창고에 쌓아 놓은 재고 정리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월 제조업 재고는 전년 동월 대비 5.8% 줄며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위축된 생산·투자·고용 활동을 이끌어내는 게 다음 정부가 직면할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공업 등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도 주된 과제로 꼽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학계 인사 등과의 간담회에서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만큼 서비스업 발전을 위해 진입 장벽, 영업 제한 등 과도한 규제를 푸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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