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창업한 중소기업 KSP는 3분 요리 같은 즉석 식품의 파우치 포장재를 만드는 업체다. 한국의 대형 식품회사들은 대부분 계열 포장회사를 두고 있어서 중소기업이 이들과 거래하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해외 시장 개척이 필수적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해온 KSP에 큰 도약의 기회가 온 건 2015년이다. 유럽계 글로벌 포장회사인 몬디 그룹이 KSP에 지분을 투자하기로 한 것. 몬디는 약 30개국에 100개 이상의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연간 매출은 8조 원에 이른다. 몬디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KSP를 선택했다. 현재 KSP 지분의 95%를 몬디 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조병구 KSP 대표는 “중소기업은 기술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투자 여력이 부족해 해외 영업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은데 몬디 그룹의 투자로 영업력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몬디는 현재 KSP에 4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검토 중이다. KSP는 선진화된 설비로 제품 품질을 향상시켜 새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외국인투자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촉진한다. 특히 KSP 같은 중소기업에 외국인투자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외국인(외국기업과 기관 포함)의 자본이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외국인은 한국을 거점으로 중국 등 대형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할 수 있다. 몬디가 KSP에 투자한 것도 중국에 직접 진출하기에는 지식재산권 문제 등 진입 장벽이 있다보니 한국 기업을 선택한 측면이 있다. 지리적으로 한국 중소기업들은 외국인투자 유치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KOTRA의 ‘2016 외국인투자기업 경영실태조사분석’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이 수출한 금액은 1103억9700만 달러(약 123조6446억 원)다. 국내 기업 전체 수출 금액 중 21.0%를 차지한다. 외투기업의 수출 비중은 2012년 20.2%에서 높아졌다. 제조업군에서 외투기업의 연구개발비는 2조2200억 원으로 전체의 6.4%다. 주목되는 것은 연구개발비 증가율이다. 전년도에 비해 외투기업의 연구개발비는 5% 늘었다. 국내 전체의 연구개발비 증가율 평균은 약 2%였다.
외투기업은 선진적인 기업 조직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할도 한다.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가 세운 한국바스프의 여수공장에서는 2004년 총파업이 발생했다. 이듬해 한국바스프는 ‘신노사문화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핵심은 노사 간의 진정성 있는 신뢰 구축이다. 이를 위해 매년 3, 4월 한국바스프 회사 대표는 전국의 7개 사업장을 돌며 임직원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노력의 결과로 한국바스프는 2007년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노사 갈등 없는 조직 문화는 고용 확대로 이어져 2014년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고용창출 우수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투자 유치가 기업의 근원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지원 정책이 기존 제품을 내다파는 무역에만 치중해 있는데 외국인투자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외국인투자를 늘리려면 투자를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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