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 시계가 없던 시절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약속된 시간’에 고객들을 깨워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인 시계는 그 직업을 사라지게 했지요. 그런데 시계 덕분에 더 많은 새 직업이 생기지 않았나요.”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 맨해튼 남쪽 인터넷 및 뉴미디어 스타트업 밀집 지역인 ‘실리콘 앨리(뒷골목)’에서 만난 인공지능(AI) 관련 신생 기업 아골로(Agolo)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무함마드 알탄타위(35)의 말이다. 컴퓨터과학 박사 출신인 알탄타위 CTO는 “AI 로봇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수많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라지는 만큼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며 이같이 대답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구글 아마존 같은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뿐만 아니라 뉴욕 실리콘앨리의 창업 시장에서도 4차 산업혁명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창업 전문가들은 “AI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신생 기업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고, AI 기술 덕분에 사람도 예산도 소규모인 스타트업이 대기업 같은 고객 서비스를 할 수도 있게 됐다. 4차 산업혁명이 창업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에선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 시장의 변화를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려는 사회적 국가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 미국 스타트업 시장에 불어닥친 4차 산업혁명의 열기
AI 기술을 이용해 복잡하고 어려운 자료를 빠른 시간에 정리 요약해 고객 기업들에 제공하는 아골로의 기업 모토는 ‘훑어보고 정리하고 요약하라(Scan, Organize, Summarize)’이다. 기자가 방문한 아골로의 단칸방 사무실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그러나 이 스타트업은 월가의 대형 금융사에서 전문인력 1명이 35시간을 매달려야 할 수 있는 문서 요약 작업을 평균 10.3초 만에 끝낼 수 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의 뉴스도 순식간에 영어로 요약해 제공하는 기술을 자랑한다.
아골라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안엔 20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AI 관련 기업이라고 알탄타위 CTO는 전했다. KOTRA 뉴욕수출인큐베이터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기업 마인즈랩(MINDsLab)의 박미선 팀장은 “맨해튼 곳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AI 관련 창업 준비 및 투자자 모임이 열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AI 기술은 법률 회계 레저 교육 통역 비서업무 마케팅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수요가 폭증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설명이다.
뉴욕에 있는 교육 관련 스타트업 ‘구루(Gooroo)’는 지난해 컬럼비아대 졸업생들이 중심이 돼 만든 신생 기업이지만 기존 기업 못지않은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 챗봇(Chatbot·채팅하는 로봇)을 통해 ‘자신의 요구에 맞는 선생을 찾는’ 고객의 문의에 24시간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구루 측은 “AI 기술 체제를 구축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독일 프랑스, “대체되는 일자리만큼 더 많은 일자리 만들어라”
산업용 가스 분야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프랑스 에어리퀴드는 올해 1월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에 ‘오퍼레이션센터’를 열었다. 이 공장에 들어가는 직원들이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안전모에는 고글이 달려 있는데 이를 통해 작업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위험한 상황도 바로 알려준다. 이 같은 ‘스마트 공장’의 등장은 편리함과 안전성을 증대시키지만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도 키웠다. 그러나 에어리퀴드는 “5만 명의 노동자 중 한 명의 노동자도 해고하지 않았다. 자동화로 인력이 줄어드는 만큼 여러 종류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소비 수요에 맞춰 생산을 조절하는 ‘리얼 타임 오퍼레이터’, 빅데이터를 사용해 생산을 분석하고 현장에 전달하는 ‘센터 애널리스트’ 같은 새로운 직종이 생겼고 재교육을 통해 직원들을 배치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일자리가 순감할 것’이란 예측은 이 공장에선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 팔린 전기자동차 73만 대 중 42만 대를 차지한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의 피에리크 코르네 이노베이션 부문 디렉터도 “예전에는 차를 고칠 때 정비사만 필요했지만 지금은 소프트웨어 전문가까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2013년 12월 14일 여당인 기독민주당(CDU)이 제1야당 사회민주당(SPD)과의 연정을 선언하면서 ‘4차산업’을 미래 프로젝트로 명시했다. 여야가 이를 국가 기술 발전의 새로운 축으로 합의한 만큼 정권이 바뀌어도 연속성을 갖게 된 셈이다. 독일의 공학한림원은 2011년부터 ‘4차산업’ 관련 협의에 3대 노동단체를 참여시켰다. 4차 산업혁명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라는 우려로 가득 찼던 노조를 향해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프랑스에서도 공화당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20년간 프랑스 경제를 이끌어갈 신성장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설립한 2009년 미래위원회를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