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일. 최동호 씨(34·삽화)는 9년 만에 다시 노량진을 찾았다. 공무원이 되리라 마음먹은 건 2008년. 군 제대 후 두 달간 노량진에서 강의를 들으며 행정학과로 전과도 했다. 하지만 수험생활이 이렇게 길어질지, 그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 오전 6시 20분. 머리맡의 휴대전화에서 나지막한 알람이 울린다. 옆방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들리는 고시원에서는 알람 소리를 작게 해야 한다. 지하방이라 아침 햇살도 없다. 샤워를 한 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고시식당’으로 간다. 고시원 ‘동기’ 10여 명이 모이지만 모두 ‘혼밥’을 한다. 밥을 다 먹고 독서실로 가서 짐을 풀고 자리에 앉으면 오전 8시. 이때부터 오후 11시 반까지 독서실을 지키는 생활을 최 씨는 석 달째 이어오고 있다.
노량진만 고집했던 건 아니다. 모교(순천대) 고시반에서도 2년을 공부해 봤지만 합격은 쉽지 않았다. 2011년 공기업 몇 군데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지방의 한 국립검역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었지만 ‘6두품’이라 승진에 한계가 있고, 대우도 다르다고 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을 들고 다시 노량진으로 상경한 이유다. 최 씨는 그렇게 ‘독서실 원시인’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의 주변엔 말을 걸어 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제 합격할 수 있을지. 불안할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독서실 원시인이 독서실을 탈출해 ‘인류’로 진화하는 길은, 현재 대한민국엔 그 길밖에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