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백수, 넌 갓수 취업 준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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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청년이라 죄송합니다]네 번째 이야기


재고용 의류창고는 물론이고 건설현장에서도 일하며 충분히 단련됐다고 생각한 몸이었다. 하지만 가볍게 숨만 쉬어도 하얀 김이 시야를 가리는 경기 남양주시의 냉동물류창고에서 박지훈 씨(24·삽화)의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두꺼운 패딩 점퍼 사이로 얄밉게 스며드는 한기에 냉동 가공식품이 가득한 상자를 분류하던 박 씨의 온 뼈마디는 삐걱댔다.

공부를 포기하고 온종일 인터넷을 뒤진 끝에 찾아낸 일당 6만 원의 쏠쏠한 알바였다. 부모가 자취방 월세비로 20만 원을 매달 보내주지만 나머지 생활비 30여만 원이 문제다. 하루 일하면 한 달 생활비의 5분의 1이 해결된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학교는 충남 천안에 있지만 급전이 필요하다 보니 학기 중에도 일거리가 많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새벽 버스에 몸을 자주 실었다. 지난 겨울방학엔 학교 인근 고깃집에서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했다. 마지막으로 토익 공부를 한 지가 까마득해 영어 공부가 부담스럽다.

생활비 걱정 없이 토익 학원에 다니고 해외 교환학생으로 떠나는 주변의 취업준비생들 모습에서 박 씨는 ‘취준’에 짓눌리는 비슷한 처지의 백수들에게도 엄연히 ‘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낙하산 탈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들만 ‘갓(God)백수(신이 내린 백수)’가 아니에요. 그저 용돈 꼬박꼬박 받으면서 취업 준비에 나설 수만 있어도 부모님의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아요.”

박 씨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취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비와 시간만 있다면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

특별취재팀 angryboard@donga.com
#청년실업#취업#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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