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대우조선해양 정상화의 키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의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이 13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긴급 회동을 가졌다. 산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양측 수장이 만난 것은 지난달 23일 정부가 대우조선 이해관계자들이 손실을 분담하는 내용의 자율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렇다할 합의를 보지 못한 채 헤어졌고, 양측은 밤샘 실무협상을 이어갔다. 국민연금은 14일 오전 투자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낼 계획이다.
13일 채권단과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이 회장과 강 본부장은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나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6시부터 9시30분까지 대화를 나누며 일부 쟁점에는 의견 차이를 좁혔지만 최종 합의안 도출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서 가장 쟁점이 된 부분은 회사채 우선상환권의 처리방식인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은 앞서 최후 수정제시안으로 국민연금이 채권의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채권의 만기를 3년 이상 연장해주면 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이 만기가 된 회사채를 상환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산은과 수은이 신규 지원하기로 한 2조9000억 원 중 별도 에스크로 계좌를 개설해 회사채 상환 자금을 미리 분리하겠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3년 뒤 대우조선의 존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어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을 해왔다. 또 대우조선이 망하더라도 국책은행이 회사채를 상환하겠다는 지급보증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양측의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채권단이 이전보다 강화된 우선상환권 처리방안을 내놓을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국민연금이 줄곧 요구해온 산은의 감자에 대해서는 이 회장이 강 본부장에게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한쪽(국민연금)이 덜컥 (반대를) 결정하면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사전회생계획안)’으로 가야하는 상황에서 두 기관장이 만나서 3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14일 최종 결론이 나는 것에 대해 “협상시한은 아직 충분하다”며 “끝까지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회장과 강 본부장의 만남은 산은 측의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과의 협상 여지가 100% 열려있다”고 말해 막판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민연금도 “산은과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혀 협상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왔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이 발행한 회사채 1조3500억 원 중 총 3900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4월 만기분인 회사채 4400억 원 중 1900억 원을 국민연금이 들고 있다. 국민연금이 17, 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 참석해 반대표를 던지면 가결 요건(총 금액의 3분의 1 참석, 참석 금액의 3분의 2 동의)을 채우지 못하게 돼 대우조선은 P-플랜으로 직행해야 한다. 만약 국민연금이 찬성하면 다른 기관들도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 자율 구조조정안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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