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고시원 옆방의 말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합판이 아닌 두꺼운 시멘트벽을 타고 그렇게 큰 소리가 들렸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아마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에 유독 크게 들렸으리라.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옆방 그 남자를 쫓아가 거칠게 화를 냈다. 유순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김대호(가명·32) 씨는 별것 아닌 일에 폭발했던 그날을 떠올릴 때면 마치 타인의 기억처럼 낯설었다.
김 씨는 2009년 2월 지방 국립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서울 노량진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이곳을 탈출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은 그는 점점 예민해졌다. 거듭되는 불합격의 고통은 죄책감으로 변했다. 지난해 말 7년간의 취업 준비를 잠정 중단한 그에게 남은 건 심한 우울증뿐이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하고 나약할까’라는 자괴감이 가득했다. 그는 현재 심리상담센터에서 우울증 상담을 받고 있다.
호모 고시오패스. 시험을 뜻하는 ‘고시’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뜻하는 ‘소시오패스’를 합친 용어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극도로 예민해져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취업에 대한 압박과 탈락의 고통에 짓눌려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는 취업준비생 모두의 모습이 반영된 용어이기도 하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많은 청년이 엄청난 취업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김 씨처럼 병으로 악화할 수 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의 아픈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이 내몰린 고된 현실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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