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공채가 사라진다는 얘기를 듣고 이번에 합격 못 하면 삼성에 들어가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다들 일단 지원하고 보자는 분위기였어요.”(이모 씨·24·여)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단국대사대부고에서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를 마치고 나온 취업준비생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하반기(7∼12월)부터는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삼성은 이날 GSAT 응시자 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용 축소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상반기 채용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GSAT 응시자 수도 지난해 상반기(1∼6월) 공채 때보다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문모 씨(24·여)는 “원래 상반기 때 학점과 다른 스펙 관리에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채용 규모가 큰 하반기 때 응시하려고 했다. 이번이 대규모로 채용하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계획보다 빨리 응시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그동안 계열사별 채용 일정과 인원을 그룹 미전실에서 총괄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수사 여파로 미전실이 해체돼 더 이상 그룹 차원의 조율은 없어졌다.
일부 수험생은 대규모 채용으로 취업준비생들에게 ‘단비’ 역할을 하던 삼성그룹 채용이 끝났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삼성전자에 지원한 최모 씨(24)는 “그룹 차원이 아닌 계열사별로 뽑으면 필요한 인원만 보수적으로 책정할 것이라 취업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재계에서도 이런 취업준비생들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룹공채를 하다 보면 경영이 어려운 시점에도 과도하게 채용 규모를 줄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룹 전체 이미지를 지키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 차원의 부담도 가졌기 때문이다. 계열사별 채용에서는 이런 심리적 부담이 적어 경영 상황에 따라 채용 규모가 급변할 수 있다.
다만 채용 절차의 경우는 계열사별 공채가 본격화해도 단번에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별로 모두 다른 방식을 도입하면 시험 출제 비용 증대나 절차상 비효율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전국 또는 글로벌 단위의 인재 확보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최소한 삼성전자가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를,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의 채용 일정을 주관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채용 일정을 섣불리 바꿀 경우 취업준비생들의 원성도 무시할 수 없다. 급진적 변화보다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개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배경이다.
삼성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하반기 채용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당장 하반기에 계열사별 채용 일정과 규모를 조율해서 뽑을지, 완전히 독립적으로 뽑을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채용 규모나 일정이 ‘미정’이라는 말이 더 무섭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이날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국내 5곳과 뉴어크,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2곳에서 진행된 GSAT에 응시한 수험생들은 오전 9시 20분(한국 시간)부터 140분간 언어논리, 수리논리, 추리, 시각적 사고, 직무상식 등 5개 영역에서 총 160문항을 풀었다.
삼성은 직무상식 영역에서 그룹이 주목하고 있는 신성장동력 사업과 관련된 문제를 출제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문항이 나왔고, 증강현실(AR)이나 전기자동차 배터리 문제도 지난해에 이어 연속 출제됐다.
‘슈퍼 사이클’로 지난해 4분기(10∼12월)와 올 1분기(1∼3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반도체 관련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 쌍끌이 품목인 D램과 V낸드, 최근 부상 중인 AP(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구별하는 문제가 나왔다. 역사 분야는 국사와 세계사를 혼합해 사건을 순서대로 나열하게 하는 등 예년과 비슷한 유형으로 출제됐다. 삼성은 GSAT 합격자를 대상으로 임원·직무역량·창의성 면접 등을 거쳐 다음 달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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