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이달 내놓은 환율보고서에서 한국과 중국을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우려했던 환율조작국 지정은 피해갔지만, 원화 절상 압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부는 14일(현지 시간) 반기 환율보고서를 공개하며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독일, 스위스 등 6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전임 정부 때인 지난해 10월에 나온 환율보고서 평가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4월 발표 때부터 3번 연속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미국은 자국 교역촉진법에 따라 △현저한 대미(對美)무역 흑자(200억 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GDP 3% 초과) △지속적인 일방향 시장 개입 등 3대 요건에 해당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의 해외민간투자공사 신규 자금 지원과 조달 참여가 금지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이번에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등 2개 요건에 해당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이 이번 보고서에서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다. 원-달러 환율이 2014년 말 이후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때부터 “취임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달러 순매수 규모를 줄이고 미국산 원자재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부터 연간 280만 t 규모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올해 1, 2월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는 38억8400만 달러(약 4조43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감소했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잠시 접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이번 결정을 예고했다.
다만 미국이 반덤핑관세 부과 등 환율조작국 이외의 수단을 통해 통상 압박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 규모에 대한 경고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가 2016년 기준 277억 달러로, 양국 사이에 지속적인 대규모 무역 불균형이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를 인용하며 “원화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관계가 틀어져 미국이 10월 보고서 발표 때 또다시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내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미국은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미 경상흑자 규모가 중국보다 큰 한국 역시 제재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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