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 분야 공약은 ‘일자리 공약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취업, 비정규직 등의 키워드가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공약 면면을 들여다보면 과연 ‘진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공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부문의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를 만들고, 사회서비스 공공기관과 민간수탁 부문에서 34만 개, 공공 부문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3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평균 급여와 4대보험료 같은 간접비 등을 감안하면 연간 40조∼50조 원이 투입될 걸로 추산하고 있다. 단순 비교하자면 4년간 총 22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 4대강 공사보다도 ‘고비용 정책’일 수 있다. 4대강 공사는 일회성인 데에 반해 공공 부문 채용의 상당 부분은 ‘지속 고용’을 전제로 한다.
공공 부문 일자리가 대체로 좋은 일자리(decent job)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실업난이 과연 공공 일자리가 부족해서일까. 그보다는 상용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45.5%) 비상용직의 저임금, 혹은 대기업의 절반을 간신히 넘어서는(62.9%) 중소기업 저임금 등 ‘임금과 처우의 양극화’가 아닐까. 이를 간과한다면 좋은 일자리의 재원 부담을 나쁜 일자리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민간이 떠안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를 내건 공약이 없지는 않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직원을 새로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직원 1인당 최대 1200만 원씩 2년간 지원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이 직원 3명을 채용하면 1명의 임금을 보전하는 ‘2+1 공약’을 내놓았다. 중소기업 인력난과 청년 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역시 중소기업에서 저임금이 왜 고착화됐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대만의 아수스나 중국의 화웨이는 부품 공급 하청업체로 출발해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한국이었다면 가능했을까. 한국에선 여전히 대기업의 원가 하락 압력으로 중소기업이 납품가를 낮게 책정하고 이를 중소기업 직원들의 저임금으로 감당해내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다른 경쟁업체에 부품을 공급할라치면 거래 중단 압박을 받거나 중소기업의 기술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불공정 관행을 엄중하게 다스리지 않고 중소기업 임금을 보전하는 것은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지원 기간이 끝난 후의 일자리와 임금의 보전을 약속할 수 없어 한시적인 중소기업 일자리를 대거 양산할 수 있다.
굳이 5년 안에 마무리 짓지 않아도 된다. 2, 3%대 성장이 고착화되는 이 저성장 시대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단기적인 처방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경제엔 공짜가 없다. 오히려 단기 성과를 앞세우다 보면 풍선 효과처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그 부담을 짊어지는 경우가 생겨난다. 수치를 앞세워 유권자를 현혹하는 공약보다도 나쁜 일자리를 ‘덜 나쁜 일자리’로 바꾸고 산업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공약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앞으로 남은 보름은 이를 감별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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