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무렵, 한 친구가 민망한 단어를 알려줬다. ‘고추스펙’…. 남성 성기인 ‘고추’가 영어나 학점만큼 구직시장에서 중요한 조건이라는 소리다. 벼랑 끝 취업전선에 몰린 26세의 여성 구직자에게는 이 이야기가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는 ‘토익 커트라인이 900점이라면, 여자는 930점은 맞아야 안전하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높은 영어 점수는 노력해서 만들 수 있지만, 날 때부터 없는 고추를 억지로 만들 순 없는 일인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몇 달 전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어렵게 해당 회사의 현직자를 찾아 ‘어떤 질문이 나오나요?’ ‘주의할 점은 뭐죠?’ 한창 묻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우리 회사는 남자를 많이 뽑아요. 지난해에도 70%가 남자였어요.”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금수저에 이어 넘지 못할 벽 하나가 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런 불만과 불안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다. 취업 못한 여성이 쏟아내는 이런 말들은 그저 실패자의 변명이자 열등감으로 비칠 뿐이니까. 더 이상 부모님에게 ‘딸송한’(딸이라서 죄송한) 자식이 되지 않기 위해 일단 입 다물고 스펙 준비부터 할 뿐이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고용주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고추스펙, 정말 존재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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