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정리 어렵고 의결권 규제 장벽… “得보다 失” 판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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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백지화]
금융 계열사 보유지분 매각 등 60조원 이상 자금 필요해 부담
자사주 신주 배정때 의결권 금지… 국회 잇단 법개정 추진도 걸림돌
역대 최대규모 자사주 소각 선언… 주가 사상최고… 시총 300조 돌파

“비용 대비 편익 측면에서 이로울 게 없다.”

삼성전자가 27일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주사 체제는 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벗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강력한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당장 20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게다가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자사주 의결권 제한, 지주사 요건 강화 등에 따라 이 금액이 60조 원 이상이 될 수 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던 삼성은 결국 현재 구조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경영권 승계 이슈화한 지주사 전환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불거진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부터다. 증권업계 등에서는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기해 왔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2014년 당시 0.57%(현재 0.60%·이하 보통주 기준)였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공식화한 것은 지난해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주 제안이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는 그해 11월 열린 콘퍼런스 콜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중립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법률 세무 등 실무적 부분을 검토하는 데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력한 시나리오는 삼성전자를 인적 분할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뒤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인적 분할을 하면 기존 주주들은 분할 후 신설된 법인들의 지분을 원래 지분대로 나눠 갖는다. 이 회장 일가와 삼성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도 양쪽 회사 지분을 18.3%씩 갖게 된다.

삼성전자는 전체 발행 주식의 12.9%에 달하는 자사주를 갖고 있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다. 인적 분할 후 지주회사는 분할된 사업회사의 지분 12.9%를, 사업회사는 자사주 12.9%를 보유하게 된다. 현행법은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가지도록 하고 있다. 지주회사가 사업회사의 지분 7.1%를 더 사야 하는데 이 돈이 20조 원을 상회한다.

○ 지주사 전환 실익도, 현실성도 없어

국회에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도 악재다. 해당 법안들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할 때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을 막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현재 12.9%인 자사주를 활용하지 못하면 지주회사는 사업회사 지분 20%를 통째 사야 한다. 60조 원 이상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지분 기준을 20%에서 30%로 높여야 한다는 대선 공약이 현실화하면 이 규모는 더 불어날 여지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지주회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건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현행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과 보험업법도 난관으로 꼽힌다.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 8.87%(삼성생명 7.55%, 삼성화재 1.32%) 갖고 있다. 금융회사가 가진 비금융 계열회사 지분이 5%가 넘을 경우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을 받지 못하면 나머지 3.87%는 팔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는다. 가뜩이나 특수관계인 지분이 20%가 채 되지 않는데 이를 더 낮추는 것은 삼성에 큰 부담이다.

○ 사업구조 어떻게 가나

삼성전자는 이날 이사회에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전량(보통주 1798만1686주, 우선주 322만9693주)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체 발행주식 수의 13.3%(보통주 12.9%, 우선주 15.9%)다. 27일 종가 기준 45조 원이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최고기록인 37조 원(2013년)보다도 20% 이상 많은 초대형 규모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아예 ‘제로(0)’로 만들면서 지주사 전환을 둘러싼 논란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와 무관하게 스스로 지주회사 전환으로 가는 길을 끊었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삼성으로서는 당분간 엎드리면서 기존 상태 유지를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긁어 부스럼을 내지 않겠다는 ‘복지부동’ 태세로 전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사주 소각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재원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결국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전환 검토가 백지화됨에 따라 삼성전자는 현행 지배구조를 계속 유지하게 됐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는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자사주 소각 소식에 전날보다 2.43% 오른 219만20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최고가를 갈아 치웠다. 시가총액도 306조 원까지 치솟았다. 국내 상장사로선 처음으로 300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 이후 기업가치가 오를 것으로 기대됐던 삼성물산은 전날보다 6.84% 하락한 12만2500원에 거래를 마쳤고, 삼성SDS도 6.48% 떨어졌다. 삼성SDS는 유가증권시장 최초로 공매도 과열 종목에 지정됐다.

이샘물 evey@donga.com·서동일·신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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