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직원 分社 시키고… 안풀리는 과제 ‘끝장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3시 00분


기업문화 혁신 이끄는 스타트업


‘캐시슬라이드’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NBT’의 허원석 경영전략팀장은 일주일 내내 사내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평소에는 일상 업무에 치여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일이다.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그의 일과는 직원 평가, 급여 조정 등으로 채워진다. 그 업무들을 일주일간 최소화하고 멘토링 프로그램 기획에만 몰두하고 있다.

“1월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꼭 짜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멘토링 프로그램은 ‘하면 좋은 일’이지만 저에겐 ‘안 하면 문제가 생기는 일’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죠.”

100여 명의 NBT 직원 모두 3월 6∼10일까지 5일간 ‘안 하면 문제가 생기는 일들’에서 잠시 손을 떼고 ‘구상만 해왔던 일’에 몰입했다. 근무 시간은 자정까지. 불타는 한 주를 보내자는 의미에서 ‘버닝위크’라고 이름을 붙였다. 대부분의 직원이 버닝위크 기간 내내 밤 12시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개발, 영업, 마케팅, 디자인 등 모든 팀이 참여했다.

최근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스타트업화’를 표방하며 기업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호칭 파괴’가 대표적이다. CJ와 아모레퍼시픽, 삼성전자 등은 ‘님’으로 호칭을 통일했다. 직원들 간의 소통 공간을 늘린 곳도 있다. 그러나 업무나 소통 방식에서의 스타트업화는 아직 더딘 것이 사실이다.

직원들의 능력을 최상으로 이끌어내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NBT는 버닝위크 기간에 개인이 설정한 목표 대부분이 달성됐다고 밝혔다.

2010년 설립된 타게팅 광고 서비스 스타트업 ‘와이더플래닛’은 2014년 가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사내 해커톤을 시작했다. 해커톤은 해킹과 마라톤을 합친 단어. 한 주제에 대해 1, 2일간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팀을 이뤄 시제품 단계의 결과물을 만드는 대회다. 2주간 진행되는 해커톤의 주제는 사내 개발팀 6개 중 한 팀에서 전담하고 있던 주제 중 잘 풀리지 않는 것으로 선정한다. 해당 주제와 관련 없는 개발팀까지 모두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한 팀에서 전담하던 과제를 해커톤 주제로 선정하면 해당 팀이 손쉽게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까지 개최된 총 4회의 해커톤에서 전담 팀이 아닌 그 외의 팀이 우승을 했다. 구교식 대표는 “같은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틀에 박힌 사고를 하게 된다. 다른 팀은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out-of-box thinking’이 가능했기 때문에 참신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해커톤 기간에는 전 직원이 팽팽한 ‘긴장 모드’에 들어가 경쟁한다. 오전 2, 3시까지 자리를 지키는 개발자도 다수다. 구 대표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해커톤 기간에는 직원들이 퇴근을 안 한다. 자존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될 해결책을 내고자 하는 열정에서다. 개인과 회사 모두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매출과 직원 수가 늘어남에 따라 대기업화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스타트업도 있다. 게임제작 스타트업 ‘쿡앱스’는 사내외에서 업무 경력이 10년 이상인 직원들은 자회사 또는 관계사로 분사해 자체적으로 기업을 꾸려나가도록 하고 있다. 이를 ‘비전2020’이라 이름 붙이고 2020년까지 20개의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입사 시 직원들에게도 ‘10년 이상의 연차가 쌓이면 분사하기를 권장한다’고 공지한다. 실제로 창업 당시 입사한 직원들을 중심으로 현재 2∼4명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3개의 스튜디오가 꾸려졌다. 3개의 스튜디오는 쿡앱스의 관계사 형태로 분사해 쿡앱스의 투자를 받고 있다. 박성민 대표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에는 무(無)계층 조직, 소규모 조직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분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이 중요해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팀을 꾸려 서비스를 만들고, 실패했을 때 해산하고 원상태로 돌아가는 전 과정이 빠르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기업에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스타트업#기업#캐시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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