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브랜드인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 총 180대를 팔았다. 그중 승용차가 7대, 나머지는 모두 버스다. 반면 렉서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은 지난해 한국에서 총 3만5429대를 팔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다가 메르세데스벤츠, BMW, 폴크스바겐 등 독일 브랜드에 밀려 시들했던 일본차가 최근 다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이 2015년 말부터 배출가스 조작 사건(일명 ‘디젤게이트’)과 인증서류 조작이 적발되면서 사실상 한국 판매가 마비된 이후다. 이 틈을 일본차 업체들이 치고 들어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브랜드 ‘톱 10’ 중 일본 브랜드는 3개가 이름을 올렸다. 3위 렉서스가 1069대, 5위 도요타가 925대, 9위 닛산이 649대였다. 10위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혼다와 인피니티도 각각 411대와 173대를 팔았다.
2000년대 초반 일본차는 안정된 품질을 무기로 한국에서 매년 성장했다.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렉서스가 흔하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2005년경 ‘독일 3총사’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폴크스바겐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차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 이런 와중에 폴크스바겐 사태로 국내 수입차 시장에 공백이 생겼고 소비자들은 폴크스바겐과 가격대가 비슷한 일본차에 쏠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본차는 승승장구 중이지만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 브랜드의 성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일하게 일본에서 팔린 한국 브랜드는 현대차(180대)다. 일본 내 54개 수입차 업체 중 33위, 점유율은 0.05%다. 같은 기간 일본에서 1위를 한 수입차는 메르세데스벤츠(6만7495대)였고 2위는 BMW(5만828대), 3위는 폴크스바겐(4만7726대), 4위 아우디(2만8718대), 5위 미니(2만4917대)였다. 독일차가 1∼5위에 올랐다.
현대차는 한국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2001년 일본에 진출했지만 쓴맛을 보고 승용차 판매를 접었다. 당시 한류스타 배용준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며 마케팅을 펼쳤지만 시장을 뚫지 못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본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일본차 또한 품질이나 안전성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 외국 브랜드가 자리 잡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일본에서 2004년에 판매대수 2524대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고 2010년 일본에서 승용차 판매를 공식 철수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버스 등 상용차 영업망이다. 2010년 이후 일본에서 승용차 신규등록 통계에 잡히는 현대차는 재일 한국공관에서 쓰기 위해 들여갔거나 일부 소비자들이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가져간 차들이다.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일본 진출에 부정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시장처럼 일본 현지 맞춤형 차종을 개발하기에는 일본의 수요가 너무 적다. 또 일본은 수익성이 낮은 경차 판매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중형세단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주력인 한국 업체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국산차 업체 관계자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시장에 들어가려는 기업은 없다. 일본에서의 한국차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당분간은 일본 시장 개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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