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물질의 운동을 연구할 때는 주로 진공 상태에서 시작한다. 공기의 존재나 중요성을 간과해서가 아니라 물질의 운동을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다. 나중에는 진공 상태를 공기가 있는 상태로 변화시키며 운동의 변화를 관찰한다. 그래야 좀 더 정확한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과학적 접근법이다.
경제학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한다. 아주 간단한 모형으로부터 시작해 현실 속 요인들을 추가하며 모형을 발전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모형이 신뢰도, 타당도, 적용 가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 즉 초기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연구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던 심리적 요인을 배제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물리학에서 공기의 존재와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편향되지 않은 합리적 예측과 판단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의 선택을 하는 존재다. 그야말로 인간을 직관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완벽한 이성의 소유자로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모습은 지극히 충동적이며 편향적이다. 경제이론이 가정하는 복잡한 계산을 실제로 해내는 경제 주체는 극히 드물다.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이 일치하는 시점에서 생산량을 결정하는 사업가를 본 적이 있는가.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의 접근법이 그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고, 경제학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저명한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는 시장경제의 암묵적 자율작동 원리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실상 ‘보이지 않는 눈속임’일 뿐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인간의 편향성으로 인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 모형은 이성적 요인과 직관적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반쪽짜리 모형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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