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선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함께 준비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열린 이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4차 산업혁명은 장사꾼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상적인 기술적 변화에 해외에선 정작 잘 쓰지도 않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붙여서 상업적, 정치적으로 남용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0년 뒤면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운전석에 앉아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보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율주행차는 현재 운전에 도움을 주는 정도인 ‘레벨2’ 적용 모델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 ‘G80’이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볼보 ‘XC90’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복잡하지 않은 도로에서 잠깐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아우디는 올해 하반기 공개할 대형 세단 ‘A8’에 복잡한 도로에서도 어느 정도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3’급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레벨3는 구글의 자율주행차 같은 연구용 자동차에만 적용됐습니다. 2030년경이면 목적지만 입력하면 운전과 주차까지 모두 알아서 해주는 자율주행차의 마지막 단계인 ‘레벨4’가 상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운전사가 있는 택시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교통사고의 원인 중 사람의 착각이나 과실로 발생하는 인적 오류가 80% 이상이어서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하면 교통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반면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사회적 위험 요인으로 분류될 처지에 놓이게 되겠죠.
그렇다면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점차 소멸되고, 자동차 운전이라는 기술 자체도 사라지는 것일까요. 수백 년 뒤 일까지 예언하기는 힘들지만 스피드를 즐기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최소한 앞으로 한 세기 이상은 운전의 명맥이 유지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알파고에 인간이 패해도 우리는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고, 자동차가 넘쳐나도 자전거를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첫 번째, 인간은 본능적으로 속도를 즐깁니다. 속도는 생존의 조건이고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맹수를 피해 빠르게 달아나야 했고, 사냥과 전쟁에서도 속도는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인간이 직접 달릴 수 있는 시속 36km를 넘어서면 불안함을 주지 않는 일정 속도까지는 쾌감이 점차 커진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인간은 근육을 사용해 교감하는 행위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빠른 비행기나 택시를 타도 편리함만 느낄 뿐 속도에 의한 쾌감은 얻지 못합니다. 스스로 근육을 써서 조종하는 대상과 교감하며 속도와 방향을 의지대로 컨트롤할 때 비로소 빠름과 이동에 대한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운전대를 절묘하게 움직여서 부드럽고 빠르게 커브길을 빠져나가고, 발로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조작하며 자동차의 물리적 특성을 지배할 때 몰입감을 느끼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악기를 터득해 멋진 연주를 하거나 복잡한 플라스틱 모델 키트를 완성하며 희열에 빠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는 마치 기계식 필름 카메라처럼 소량 생산되더라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고 그 가격은 자율주행차보다 훨씬 비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자화되지 않고 기계식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1990년대 생산된 공랭식 포르셰 ‘911’ 모델의 가격이 날로 올라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넘어 로봇이 대부분의 노동을 담당하고 인공지능이 만들어 주는 온실 같은 세상 속에서 인간이 안전하게 사육되는 미래가 올 때 더욱 가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손으로 직접 만들고 땀을 흘려 움직이고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는 분야일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자율주행차가 99% 도로를 차지한 시대에 운전은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생존을 확인시켜 주는 값비싼 기술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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