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어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정과제 1순위인 일자리를 담당할 대통령일자리수석비서관 신설 등 청와대 직제개편을 상정해 의결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다”며 첫 업무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한 데 이은 조치다. 정부는 10조 원 규모의 일자리 만들기용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향후 5년 동안 재정지출을 연평균 3.5%에서 7%로 늘리는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일자리를 확충할 방침이다. 나랏돈을 풀어 정부 주도로 일자리를 만들고 가계소득을 늘리는 ‘소득주도 성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의 핵심인 셈이다.
4월 기준 실업률이 17년 만에 최고 수준(4.2%)으로 치솟고, 청년층 실업률 역시 역대 최악(11.2%)으로 치달으면서 일자리 창출에 정부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나친 양극화는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저해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이행하려면 5년 동안 100조 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세금으로 만들어내는 공공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 돌아갈 자원의 흐름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 특히 81만 개 숫자에 얽매여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판만 챙긴다면 공무원들은 머릿수만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을 우려가 크다.
정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해 구성하는 가칭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공약을 재점검할 때 지속 불가능한 공약은 과감히 버리는 용기를 보이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표를 얻기 위해 내걸었던 무리한 공약들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솔직히 폐기하는 것이 옳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강연에서 문 대통령이 ‘경제학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라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언급한 것을 기억한다면, 이제는 대선공약도 현실에 맞게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다.
일본 경제를 되살린 아베노믹스는 통화 확장과 재정 확대, 그리고 구조개혁의 세 가지 화살로 이뤄져 있다. J노믹스는 재정 확대는 있지만 구조개혁이 빠져 있어 일자리 창출과 성장이 가능할지 걱정스럽다. 보수 경제학자임에도 문 대통령이 영입해 J노믹스의 골격을 짠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규제 완화야말로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경기 활성화 비결이라고 했다. 미국에선 지난 10년간 교육, 헬스케어, 레저 등 서비스 분야에서만 약 700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국회에 묶여 있는 규제프리존법, 서비스산업발전법, 규제개혁특별법 등은 서둘러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서비스산업발전법은 노무현 정부 시절 발아(發芽)한 것인데도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을 잡은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이전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계속 막을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은 만큼 이제는 통과시키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챙기기와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해치는 대기업 힘의 남용은 당연히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일자리는커녕 신성장동력도 생겨나기 어렵다. 더구나 글로벌 혁신경쟁에 돌입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기업들의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한다면 기술혁신에 필요한 전략적 제휴 등 민간의 창의성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세계적으로 순환출자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통한 개혁은 강력히 촉구하되 기업을 옥죄는 노동개혁도 동시에 이뤄져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표를 얻기 위해 노조에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에도 반대했다. 노동개혁 못지않게 방만한 공공부문에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노동개혁에 앞장선 것처럼 문 대통령이 거대 노조에 고통 분담을 호소하며 전체 공무원들과 함께 공공개혁에 솔선수범한다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룩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곧 경제팀 내각이 발표된다. 경제 수장(首長)만큼은 이념과 정파를 떠나 경제 재도약과 일자리 창출에 가장 적합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을 발탁해 전권을 줘야 한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에 최고의 엘리트를 중용한 ‘경제드림팀’을 꾸려 모두가 바라는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기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