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같은 치명적 전염병이 출현하기 전에 위기를 예상해 미리 개발, 비축한 백신으로 신속히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상상해 보자.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하고 1년 후, 1만10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6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됐다. 빌 게이츠는 “에볼라와 지카는 세계가 국지적 질병 발생을 탐지하고 대유행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신속히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음 위협에 직면할 때 세계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월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신종 전염병에 대한 새로운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글로벌 연합체의 출범이 발표됐다.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은 초기 5년간 필요한 연구개발 예산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의 절반가량을 이미 확보했다. 독일, 일본, 노르웨이 정부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빌 게이츠 재단)과 웰컴트러스트 등 국제 자선기관과 함께 총 4억6000만 달러(약 5100억 원)를 초기에 투자한다. 인도도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여타 과학기술 강국과 함께 한국도 이에 투자하고 참여함으로써 세계보건 기여를 확대하면서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미 세계보건을 위한 신종 백신과 신약들을 개발해낸 성공적인 글로벌 공공민간협력 사례들이 있다. 빌 게이츠 재단이 지원한 개별 프로젝트로 혁신진단재단(FIND), 국제백신연구소(IVI), 말라리아퇴치의약품벤처(MMV) 같은 기구들이 한국 기업과 협력해 왔다. 이들은 전염병 신속진단 키트, 경구용 콜레라 백신, 말라리아 치료제 등을 개발했다.
CEPI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에 대비하는 백신을 연구개발, 비축하는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방어 전략이다. 이 기구는 메르스, 라사열, 니파바이러스 등의 신종 질병에 대한 백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이미 전 세계 기업과 과학자들로부터 연구개발비 신청을 받고 있다.
CEPI는 기업들에 연구개발비를 지원하여 신종감염병 연구 참여를 막는 시장장벽(Market barrier)을 극복하도록 한다. CEPI로 인해 경쟁력 있는 한국의 생명공학 기업들은 연구비를 확보할 기회를 갖게 되며, 백신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만들려는 한국 정부의 계획은 한국 기업들에 대한 CEPI의 자금 지원으로 더욱 촉진될 수 있다.
한국은 메르스와 최근의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사태 등 인간 및 동물 전염병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미국학술원에 따르면 21세기 대유행 질병으로 인한 비용은 연평균 600억 달러(약 66조 원)에 이른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이 비용을 감안해 백신에 1달러를 투자하면 16달러의 혜택을 창출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염병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는 전염병 대응책을 개발하는 현 체계에 여러 취약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런 취약성은 전 세계의 문제이며 각국의 협력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CEPI의 출연국은 공조를 통한 질병 위협의 확인과 우선순위 지정, 백신 개발, 창궐 시에 대비한 백신 비축에 투자한다. 이를 위해 CEPI는 상당한 규모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의 현 의장국인 한국은 CEPI에 기금을 투자하고 여타 국가의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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