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옥 씨는 고무장갑을 낀 채 청소도구함을 세워놓고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 세제의 양과 종류, 쓰임은 모두 (인천국제공항)공사 내 시설환경 팀에서 정해줬다. 하지만 기옥 씨에게 월급을 주는 곳은 용역회사였다. 그래서 기옥 씨는 용역회사 쪽 사정과 공사의 상황을 둘 다 잘 몰랐다. 그리고 그건 회사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하루의 축’은 인천공항 청소부인 기옥 씨의 우울한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전 세계 사람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그는 승객들에게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공사에 직접 고용되어 있지는 않다.
이런 기옥 씨가 현실에서는 공사 소속의 정규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12일 인천공항을 전격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천명했고, 공사가 연내 비정규직 1만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善意)로 시작한 정책이 선의가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업무의 연속성이 있고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한 기간제법이다. 이는 오히려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지속 고용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근로자를 2년만 쓰고 내보낸 뒤 다른 직원을 채용하는 ‘직원 돌려 막기’를 했다.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도 다르지 않다. 인천공항공사는 신규 채용을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다른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조 원에 육박해 직접고용 전환 부담이 비교적 덜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 298곳의 공공기관 중 37.2%(111곳·2015년 말 기준)가 적자를 내는 게 현실이다.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대신에 신규 채용 여력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형편이 어려운 중소·벤처기업은 물론이고 민간은 사정이 더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기 전에 기관의 생산성 문제도 함께 따져봤어야 했다. 실제로 인천공항공사 초봉은 최고 수준이다. 공공기관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공시된 공공기관 35곳의 신입사원 초봉 중 인천공항공사가 4215만5000원으로 가장 높다. 초봉이 비교적 많은 데다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마다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현 체제를 손보지 않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외친다면 어느 기관이건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대선 후보가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선언이 달콤하게 들리지만 누군가에겐 독약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심화됐던 고질적 문제다. 그동안 공공기관의 정규직 임금이 어떻게 책정됐는지, 이들의 생산성이 임금에 합당한지, 왜 간접고용이 확산됐는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의 여지는 없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순차적으로 추진해도 늦지 않다.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을 위해 정규직과 노조의 양보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네덜란드는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구조를 만들어냈다.
새 정부도 정책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노사정이 함께 힘을 모아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큰 그림을 내놓길 기대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행복한 기옥 씨’가 더 많아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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