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9월 이후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는 거대한 소통 절벽이 생겼다. 대기업과 정부 간 가교 역할을 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각 기업의 대관(對官) 활동도 지난 몇 달간은 사실상 중단돼 있었다.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해 그룹 차원의 대관 기능을 아예 없앤 게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여전히 소통에 목말라 있다. 이번 설문에서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기업은 전무했다. 다만 기업 규모에 따라 원하는 소통방식은 많이 달랐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 간 간담회’를 원한 대기업은 16.1%에 불과했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의 개별 면담’을 선호하는 대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대기업은 그 대신 54.8%가 ‘각 부처(장관)와 기업 간 소통’을 꼽았다.
과거 대통령들은 취임 후 경제인 대표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거나 각 기업 총수를 따로 만나 투자 및 채용 확대를 요청하는 게 관례적 수순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는 이를 모두 뒤엎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룹 총수들 간 개별 면담이 검찰 수사에서 불법적 민원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 기소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을 뇌물죄 적용의 주요 근거로 썼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개별 면담 전 양측에서 준비한 ‘말씀 자료’마저 부정 청탁의 근거가 되는 마당에 대통령을 따로 만나고 싶은 총수가 누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대통령과의 직접 소통을 선호한다. 설문에 응한 중소기업들은 ‘대통령과 기업 대표들 간 단체 간담회’(48.3%)나 ‘대통령과 기업 대표들의 개별 면담’(10.3%) 등을 원했다. ‘청와대와 경제단체 간 활발한 소통’을 선택한 비율도 중소기업(37.9%)이 대기업(29.0%)보다 높았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어느 때보다 ‘친(親)중소기업’ 정책을 예고하고 있는 데다 중소기업들이 최상위 결정권자에게 정책 건의를 할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방통행은 적절치 않다.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을 기업이 알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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