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2월 7일은 한국 경제사에 또 하나의 굵직한 족적을 남긴 날이었다. 락희화학은 이날 미국 셰브론의 자회사 칼텍스와 절반씩 지분을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최초의 글로벌 합작 프로젝트였다.
이듬해 5월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현 GS칼텍스)가 설립됐다. 이 회사는 반세기의 세월을 넘어 19일 창립 50주년을 맞게 됐다.
○ 성공적인 최초 한미 합작 사례
GS칼텍스는 국내외 합작사 중 ‘최초’와 ‘최대’ 타이틀을 함께 갖고 있다. 50년간 이어진 성공적인 협업은 미국 기업의 해외 합작 프로젝트 중에서도 손꼽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은 정유,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 중화학공업 분야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설립 초기 칼텍스와의 공동경영체제는 호남정유가 시장에 조기 안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81년 2차 석유파동으로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 확보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호남정유만은 예외였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당시 칼텍스의 모회사인 셰브론의 국제 신용도 덕분에 호남정유가 원유를 확보할 수 있어 국가 전체가 위기를 헤쳐 나왔다”고 전했다. 호남정유는 이때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유휴 정제시설을 활용한 ‘임가공(賃加工) 수출’을 시작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석유 수출국으로 변모하는 출발점이었다.
한미 공동경영체제는 1986년 한국 측 단독경영체제 전환과 함께 막을 내렸다. 20년간 축적한 경영 능력과 기술력을 칼텍스 측이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도 한국 경영진들은 대규모 투자건 등 주요 사항을 결정할 때는 항상 칼텍스와의 합의를 거쳤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한미 경영권 다툼은 한 차례도 없었다. 정확히 50 대 50인 지분도 50년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LG그룹에서 GS그룹이 계열 분리된 후로도 이는 변함이 없었다.
GS칼텍스의 매출액은 1968년 12억 원에서 지난해 25조7702억 원으로 뛰었다. 석유 정제 능력도 창립 초기 하루 6만 배럴이던 것이 현재는 하루 79만 배럴로 늘었다. 지난해까지 전남 여수공장에서 정제한 원유량은 약 80억 배럴. 200L 드럼통에 채워 한 줄로 세우면 약 4만 km인 지구 둘레를 140바퀴나 돌 수 있는 양이다.
2000년대 들어 GS칼텍스는 완벽한 수출기업으로 거듭났다. 2000년 전체 매출액의 23%였던 수출액은 2006년 50%를 넘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수출 비중은 71%였다. 해외 자본과의 합작을 통해 ‘수출 효자’를 키운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GS칼텍스는 경영권 분쟁 리스크가 없다면 합작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 100년 기업 꿈꾸는 허진수 회장
GS칼텍스는 18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지난 반세기의 성과를 자축했다.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내실 있는 100년 기업과 최고의 회사를 만든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힘찬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딱 하나의 화환이 자리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보낸 선물이었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로 시작된 구(具)씨와 허(許)씨 집안의 동업은 2005년 GS그룹이 계열 분리를 완료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그해 3월 GS그룹 출범식에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이날 GS칼텍스 50주년 기념식에 등장한 화환은 두 집안의 변함없는 우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두 집안의 경영 철학이 ‘인화’와 ‘신의’에 있다는 점이 같은 사업 부문에 함께 진출하는 것을 여전히 꺼리는 동업자 정신의 배경이다. GS그룹이 셰브론과 오랜 동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허 회장은 100년 기업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의 강점을 활용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중 하나가 2007년부터 연구개발(R&D)에 착수한 바이오부탄올 사업이다. GS칼텍스는 올 하반기(7∼12월) 바이오부탄올 데모플랜트를 완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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