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크루거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83·여)는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7 동아국제금융포럼’에 기조 강연자로 나서 “한국의 노동, 재정, 연금 등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크루거 교수는 2001∼2006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와 총재 대행으로 일했다. 한국 경제와 무역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을 만큼 한국에 관한 이해도도 높다. 그는 “한국 정부가 20년 전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지만 구조조정 없이는 그 다음 성장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노동개혁으로 고령화 위기 넘어야”
크루거 교수는 ‘세계 경제 속 한국에 대한 전망’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한국은 어느 선진국보다 빠른 고령화로 20년 뒤면 생산가능인구가 현재의 66%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여성 1명의 평균 출산 예상 자녀 수)은 1.17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반면 노인 인구 비중은 2018년이면 14.3%로 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된다.
크루거 교수는 “생산가능인구의 노동시장 신규 진입이 줄고 노동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를 반전하기 위한 조치가 꼭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는 노동개혁과 재정, 연금개혁 등을 꼽았다. 노동개혁 방안으로는 △임금근로자의 퇴직 연령 상향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 해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실직자의 재취업 기회 확대 등을 제시했다.
특히 크루거 교수는 비정규직이나 청년층에 다양한 직업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확산될수록 노동시장은 더욱 유연해질 것”이라며 “교육 기회를 많이 제공해 이직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930년대 미국이 연금제도를 도입할 때 국민들은 65세에 퇴직해 3년 뒤 사망한다고 예측했다”며 “지금은 퇴직 후 20년은 더 사는 만큼 한국도 연금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거 교수의 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고 있는 포용적 성장과 맥이 닿아 있다. 청년, 취약계층 등에 기회가 골고루 돌아갈수록 불평등이 해소되고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직접적인 일자리 확대와 근로자 교육 강화는 민간이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하며 정부는 노동개혁 같은 정책적인 측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 산업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금융 지원 확대 등이 활성화되면 그만큼 일자리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다.
○ “한국, 올해가 개혁의 적기”
기조강연 이후 진행된 크루거 교수와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의 대담은 한국을 둘러싼 각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명쾌한 진단을 제시해 청중의 관심을 모았다. 크루거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언행의 일관성이 없어 지속 가능한 경제 회복을 막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인세 인하’나 ‘소득세 감소’ 등은 긍정적이지만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출 확대를 공언하는 것은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경우 당분간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겠지만 전 세계 경제를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장기침체에서 벗어난 일본은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크루거 교수는 “위기는 구조 개혁을 잘하지 않을 때 일어나 모두에게 고통을 준다”며 “한국은 새 정부 등장으로 모두의 기대감이 높은 올해가 개혁 추진의 적기”라고 말했다.
:: 주요 참석자 명단 (가나다순) ::
△금융그룹=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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