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정규직 전환의 성공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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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부 차장
허진석 산업부 차장
통신업을 한 지 20년이나 되는 SK브로드밴드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유례없는 정치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과 인터넷TV(IPTV), 전화 등의 애프터서비스(AS)와 신규 고객 유치 업무를 하는 103개 고객센터 소속 위탁업체 직원 5189명 전부를 내년 7월까지 모두 자회사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21일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0)’의 슬로건이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쳐 이런 조치가 발표된 것 아니냐는 해석 때문에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이 5월 10일인데, 열하루 만에 이른바 ‘코드’를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발표를 했다고 여기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일까.

경과만 살펴봐도 이런 해석은 무리다. SK브로드밴드는 고객센터를 자회사에 의한 직영 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올해 1월에 이미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그 이전인 2015년 5월에는 고객센터의 안정적 운영을 돕는 방안과 고객센터의 구조를 혁신하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종합개선 방안도 마련했다. 2014년 3월 민주노총 산하에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가 생기고, 이후 부분·순환·전면 파업 등으로 고객 서비스가 불안정해진 것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시장 상황은 핵심적 영향을 끼쳤다. 인터넷 가입 가구가 거의 포화상태에 있고, 통신사별로 상품 차별화가 힘든 상황이어서 고객센터의 응대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고장 나 신고를 했는데도 늦장 출장이 잦다면 통신사를 바꾸지 않을 고객이 몇이나 되겠는가.

통신사업자를 바꾸는 가구가 늘어나면 회사는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도 잃게 되는 게 현재의 시장 상황이다. 가구별로 지금은 인터넷과 IPTV, 전화 서비스 정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그 서비스는 사물인터넷(IoT)과 헬스케어 인공지능비서 헬스케어 에너지관리 등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이에 자회사 ‘홈앤서비스’(가칭)를 만들어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임으로써 홈토털 서비스의 허브로 육성한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올해 3월 이형희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5년간 5조 원을 투자해 국내 제1의 유무선 플랫폼이 되겠다”고 밝힐 때 ‘유통 경쟁력 강화’도 얘기했다.

정규직 전환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어 왔다. SK텔레콤은 2013년 5월 통신망 유지 보수 업무를 하는 인력과 고객 상담과 불만 접수 등의 일을 하는 인력 약 43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기술 변화 속도에 맞춰 효율적으로 지역별 기지국을 통합 관리하고 고객 눈높이에 맞춘 응대로 가입자를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정규직 전환 후 고객상담센터 직원들의 퇴사율이 2011년 6.5%에서 2016년에는 1.9%로 크게 낮아져 내부에서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다.

새 정부는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임부회장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정부가 민간기업에 정규직 전환을 강요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을 질타했다. ‘강요가 아닌 필요’에 의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건강한 일자리를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와 재계는 시선이 다르지 않다. 본질은 양질의 일자리다. 정부와 재계가 마음을 모아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주기를 국민은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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