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가장 확실한 변화는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이자 ‘에너지혁명 2030’의 저자 토니 세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 방문 때 “10년 후 한국전력은 어떻게 될까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전과 글로벌 대형 전력회사들은 없어지겠죠.”
지금처럼 한전이 전기 도소매상 역할에만 머문다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경고음이다. 세바 교수는 2030년 현재의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 생산은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과장된 면도 있다. 화석연료의 종언은 전기 요금이 크게 오르고 전력수급도 불안해질 수 있어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새 정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 단계적 폐쇄’라는 정책도 발표했다. 공사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운명도 불투명하다.
에너지 시장의 빅뱅은 이게 다가 아니다. 침묵하던 소비자들이 어느 순간 프로슈머(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로 변신해 전기를 만들고 사고판다. 전기, 통신, 자동차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산업 간 경쟁도 치열해진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상황이다. 세계 굴지의 에너지기업들은 이미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향상에 명운을 걸었다.
에너지산업의 더 큰 변화는 정보기술(IT) 융합이다. 한전 등 세계적 전력회사들이 4차 산업혁명의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가 되고 있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가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에너지 플랫폼’을 구축하느냐가 에너지 시장의 승자를 결정짓는다. 에너지 플랫폼은 전력 생산 및 수송 판매 과정에서 생기는 천문학적 숫자의 정보를 빅데이터화해 에너지 소비의 효율을 높이는 솔루션(해결 방안)으로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에너지 플랫폼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로봇 같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급물결을 타고 있다.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줬다.
한전은 수십 년간 쌓아온 3조6000억 개의 전력 빅데이터를 갖고 있다. 900만 개에 이르는 전주(電柱)를 기지국처럼 활용하면, 전기만 수송하던 전력망을 전기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에너지 인터넷망’으로 바꿀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하면 화력발전 없이도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제주 남쪽 가파도처럼 ‘탄소제로섬’들도 더 빨리 늘어날 것이다. ICT와 에너지산업의 강국인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능력이 충분하고, 기회도 분명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융합하는 시대에 산업의 경계는 더 이상 한계가 아니다. 경계를 깨고 기존의 익숙한 질서와 과감히 결별해야만 비로소 ‘파괴적 혁신’이 시작된다. 엉뚱하고 별난 착상과 실행을 하는 인재를 확보하고 스스로 닫아 놓은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 한국의 미래 경쟁력은 4차 산업혁명과 신에너지 생태계라는 새로운 길을 얼마나 빨리 개척하고 주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전은 현재 ‘업(業)의 변화’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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