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인 김철규 씨(25·삽화)는 한국관광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년 7개월간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과 유통 기업에서 근무했다. 남부럽지 않은 ‘해외 취업’에 일찌감치 성공했지만 마음은 늘 무거웠다. 실적 압박이 심했고 빡빡한 외국 도시 생활에 금세 지쳐 버렸다. 김 씨가 일을 하면서 찾고 싶었던 보물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김 씨의 눈을 사로잡은 건 지난해 5월 제주 서귀포시의 복합리조트인 ‘제주신화월드’ 채용 공고였다. 제주신화월드는 외국자본까지 총 2조5000억 원으로 외국인 카지노와 테마파크를 조성 중인 초대형 리조트다. 전공을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워라밸까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련 직무 경험 역시 충분해 자신감도 넘쳤다. 정규직 사원으로 당당히 합격한 김 씨는 현재 인사 업무를 맡고 있다.
“고민 없이 바로 결심했어요. 제가 등산과 낚시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제주도라면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등산과 낚시만큼은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주엔 워라밸만 있는 게 아니다. 노동시장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통계청의 4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제주의 고용률은 71.0%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70%를 돌파하며 1위를 기록했다. 대기업이 밀집한 서울(60.1%·10위)보다 무려 10.9%포인트나 높다. 제주는 원래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과 중장년층이 많고 농어업 일자리가 많아 고용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광서비스업과 외국자본 투자가 고용률 상승을 견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서비스업 일자리와 워라밸을 찾아 유입되는 청년층이 증가하면서 지역에 ‘생기’가 돌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제주 생활 11개월 차인 김 씨는 매일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일한다. 아침마다 통근버스에서 잠잘 틈이 없다. 창문 밖 풍경을 보면 직장생활로 쌓인 스트레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야자수와 돌담이 가득한 리조트 곳곳을 산책할 때면 남태평양의 휴양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칙칙한 회색 빌딩만 가득했던 도시 생활과는 180도 다른 환경이다.
또 다른 장점은 공기다. 미세먼지와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의 퇴근길과 달리 섬 공기를 마실 때마다 제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거기 남은 자리 없느냐”며 관심을 보이는 친구가 늘었다. 이제 김 씨는 소망 하나가 더 생겼다. “오래 살고 싶어요. 제주도에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