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뉴스룸]‘자원거래 부국’ 된 ‘자원 빈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7일 03시 00분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일부 이슬람 ‘수니파’ 국가가 이달 5일 ‘시아파’ 이란과 호의적인 관계를 보인 ‘수니파’ 카타르에 전격 단교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 단교 선언은 엉뚱하게 액화천연가스(LNG)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카타르는 세계 1위의 LNG 수출국(점유율 31%)이다. 만일 수니파 국가들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해당국 경제는 혼란에 빠진다. 분위기는 미묘하게 엇갈렸다. UAE는 바짝 긴장한 반면 이집트는 느긋했다. UAE는 카타르로부터 직접 가스를 공급받지만 이집트는 스위스 원자재 기업을 통해 간접 공급을 받기 때문이다. 카타르가 공급을 끊어도 스위스를 통하면 별 문제가 없다.

스위스는 관광자원 외에 별다른 천연자원이 없는 전형적인 ‘자원 빈국(貧國)’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전 세계 금속과 커피 60%, 설탕 50%, 원유 곡물 35%가 거래된다. 영세 중립국 스위스는 정치 사회적인 안전성, 풍부한 금융 인프라를 갖춰 중동, 아프리카 등 원자재 생산국에 최적의 상품 거래 장소로 꼽힌다. 1970년대 석유 파동, 1990년대 소련 붕괴 등을 거치면서 스위스는 낮은 세금, 투명성, 친기업 법률 서비스 등으로 원자재 기업을 적극 유치했다. 현재 스위스 제네바, 추크 등에는 550개 이상의 원자재 기업이 자리를 잡았고 영국 런던, 미국 시카고를 제치고 최대 원자재 거래 허브로 떠올랐다.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4%가 원자재 거래에서 발생하며 최근 쇠퇴 조짐을 보이는 은행업을 원자재 거래가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직간접 고용 인원만 3만 명이 넘는다.

아시아에도 비슷한 나라가 있다. 별다른 천연자원이 없는 싱가포르가 원자재 거래 허브로 떠오른 것이다. 영민한 싱가포르는 일찌감치 원자재 거래의 파급효과를 간파하고 2001년 ‘원자재 거래 허브화’를 추진했다. 싱가포르에 정착하는 원자재 거래 기업에 각종 혜택을 줬다. 일정 수준 이상의 원자재 거래 인력을 고용한 기업들에는 법인세율을 절반으로 낮췄다. 싱가포르는 이 같은 적극적인 유치 전략으로 중국 상하이, 홍콩 등 경쟁 무역 도시를 제치고 아시아 최대의 원자재 거래 시장으로 도약했다. 전 세계 금속 20%, 곡물 20%, 설탕 20%가 싱가포르에서 거래된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세계 시장에서 철광석의 가격을 설정하는 나라는 중국이 아닌 싱가포르”라고 분석했다.

한국도 스위스, 싱가포르처럼 자원 빈국이다. 이 국가들처럼 무역이 발달했고 해운 등 기본 인프라도 풍부하다. 중국, 일본, 동남아 국가 등 원자재 확보처와 소비처도 가깝다. 일찌감치 허브화 전략을 세우고 거래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면 싱가포르 못지않은 원자재 거래 허브로 도약할 수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자료에 따르면 2003∼2013년 16개 주요 원자재 거래 기업의 순이익은 2436억 달러(약 277조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주요 자동차 제조사와 투자은행의 순이익보다 많았다. 스위스,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고해 숨은 산업을 발굴하고 성장의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야 할 때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
#자원거래#수니파#카타르#스위스#싱가포르#자원 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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