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美만화시장 뚫은 한국의 ‘웹툰 플랫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일 03시 00분


웹툰 비즈니스 모델로 美 진출한 ‘타파스미디어’

2012년 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은 구글 본사에서 일하던 한국인 프로젝트매니저 한 사람이 ‘세계 최고의 기업이자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회사’를 나와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아이디어도 황당했다.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가 양분하고 있는 미국의 만화시장에 도전한다는 것. ‘엉뚱한 사업가’라 할 만한 김창원 현 타파스미디어 대표는 당시 한국에서 이미 대세가 돼 있던 웹툰을 비즈니스화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국의 웹툰을 미국에 소개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 앞서 있는, 이른바 ‘선진’ 웹툰 비즈니스 모델을 미국시장에 도입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많은 투자자가 회의적이었다. ‘그게 되겠느냐, 성공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2012년 3월 타파스미디어를 실리콘밸리에 세우고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 ‘웹툰 플랫폼 비즈니스’가 핵심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결과적으로는 ‘대박’이 났다. 2016년 5월 유료화에 성공한 이후 월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2만7000여 명에 육박하는 작가를 확보했다. 이 작가들이 만들어 낸 작품 수만 3만6000여 개에 이른다. 3만6000여 개의 작품이 각각 연재되고 있는 셈인데, 이를 다시 각각의 ‘연재 편수’로 쪼개면 총 60만여 편이다. 웹툰을 보기 위해 북미 지역과 세계 각지에서 가입한 회원은 200만 명이고 월평균 방문자는 160만 명이 훌쩍 넘는다. 매월 회원 수는 10%씩 증가하는 추세이고, 누적 페이지뷰는 20억 뷰가 넘은 상황이다. 유료화 성공 이후에도 투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놀라운 성공의 비밀은 무엇일까.

흔히 ‘코믹스’로 불리는 미국의 만화시장은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 등의 캐릭터로 유명한 DC코믹스와 캡틴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등으로 유명한 마블코믹스가 양분하고 있다. DC코믹스뉴스닷컴에 따르면 2017년 3월 기준으로 DC와 마블은 각각 시장을 30∼40%씩 차지하며 미국 코믹스 시장의 총 70%를 점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고도로 시스템화돼 있는 DC와 마블의 경쟁 구도는 엄청난 콘텐츠 파워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분명 약점도 있다”며 “머리가 희끗한 백인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끊임없이 새로운 ‘히어로’를 만들어내는 구조와 시스템은 결국 한정된 소재로 유사한 방식의 스토리 전개가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그런데 한국의 웹툰은 달랐다”며 “스포츠, 일상, 개그, 직장, 판타지 연애물 등 다양한 소재와 무한한 주제,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볼 때 분명 ‘∼맨’으로 상징되는 슈퍼히어로물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원하는 수요, 여성 지향적 작품을 원하는 수요는 미국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타파스미디어는 원래 한국의 콘텐츠를 미국에 팔려는 의도를 갖고 있진 않았다. 한국에서 성공한 ‘미생’ 같은 직장 이야기나 일상에서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한국형 ‘일상 공감툰’이 북미시장 독자들에게 그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일상, 그리고 직장생활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파스미디어는 한국의 ‘웹툰 플랫폼 비즈니스’를 미국에서 실행하고자 했다. 플랫폼은 한국에서 시작된 형태였지만, 콘텐츠는 북미 등 해당 지역 작가들이 제공하는 모델이었다. 타파스미디어가 창립과 동시에 뛰어난 웹툰작가를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이유다. 마침 타파스미디어의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의 수강생 중에서 실제 자신의 블로그 등에 작품을 그려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타파스미디어라는 플랫폼을 소개하며 일대일로 설득하면서 영입 작전에 나섰다. 또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분산돼 있는 작가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20여 명을 모아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 수로는 ‘집단 운영 블로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렵기에 직원들이 직접 나서 개인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컨벤션 등 각종 모임을 찾아다녔다. 냉담한 반응이 계속되자 김 대표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한 끝에 네이버, 다음카카오, 레진코믹스 등 한국의 웹툰 플랫폼 사이트를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마치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요일별 만화, 놀라운 조회 수와 댓글, 광고 수익 모델까지. 한국의 성공한 웹툰 비즈니스 플랫폼을 보자 작가들도 술렁거렸다.

그 덕분에 작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했고, 타파스미디어는 급속도로 ‘북미시장 대표 웹툰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만화가 아니라 ‘스낵컬처’

타파스미디어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 ‘모바일 시대로의 급격한 이행’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사인 삼정KPMG에 따르면 스마트 미디어 환경으로 콘텐츠 이용 방식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 시장 기준으로 기존 인쇄물 콘텐츠 시장은 연평균 2.3%씩 감소하고 있지만 인터넷·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 도서 시장은 연평균 14.1%씩 증가하고 있다.

타파스미디어는 미국의 만화 시장 내 빈틈, 즉 충족되지 못한 니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플랫폼 비즈니스’가 본질이었다. 그러한 플랫폼은 웹툰만이 아니라 웹툰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패턴, 즉 ‘스낵컬처’ 전반을 중심에 둔 것이었다. 스낵컬처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문화 트렌드를 말한다.

‘미국의 만화 시장’이 아니라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 ‘스낵컬처’를 중심에 놓고 플랫폼을 만들었기에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뛰어난 작가들을 모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한국의 성공한 웹툰 가운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거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작품들의 경우 번역을 통한 ‘수출’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또한 유료화에 대한 저항감을 낮추기 위해 한국의 선진적인 유료화 시스템이자 게임 아이템 결제 및 웹툰 결제 등에 적용되는 다양한 방식을 채택했다. 이미 작가 후원 시스템 등을 통해 콘텐츠에 대한 비용 지불에 익숙해지고 있던 타파스미디어 회원들은 이러한 유료화를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고, 유료화는 타파스미디어의 성장에 날개가 됐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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