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창조도 융합도 결론은 사람을 향한 기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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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창조는 어떻게 일어날까? 고수나 멘토(조언자)가 왕도를 가르쳐 줄까? 아니면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누군가 요령을 알려줄까? 하늘 아래 무(無)로부터 창조되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변화하는 세상과 변화를 미루려는 사람, 그 틈을 메울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일, 또는 사람들의 머릿속이든 실질적이든 편안함을 추구하는 수요를 찾아내서 만족시켜 주는 일이 창조가 아닐까? 특히 경제적 관점에서 창조는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계속해야 한다. 이때 새로운 시각, 예컨대 문화, 예술, 인문학 등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면 제품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 즉 사람의 관점에서 무언가 부족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한 반복과 좌절, 실패와 눈물이 따를 것이다. 그래야 창조물이 더 가까이 더 편안한 형태로 사람들 곁에 머물고 사랑받는다. 창조의 주역은 학자가 아니다. 끈질긴 집념과 따뜻한 시선을 가진 발명가, 연구자 또는 기업가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혹시 출근길에 동네를 누비는 야쿠르트 배달용 전동카트를 눈여겨본 일이 있는가? 한국야쿠르트가 국내 중소 중견기업 4개 사와 협업하여 개발한 이 전동카트는 세계 최초 ‘탑승 가능한 이동형 냉장고’다.

요구르트와 냉커피 등 수백 개의 제품을 동시에 넣을 수 있게 설계됐으며, 유제품을 신선한 상태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동시에 직접 타고 다닐 수 있으며, 심지어 대형 파라솔까지 설치할 수 있어 한여름 태양이나 장맛비도 막을 수 있다. 더구나 8시간 충전으로 하루 종일 운행하는 데 문제가 없는 친환경 시스템에, 최고 시속 8km로 제한함으로써 안전까지 신경을 많이 쓴 제품이다.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제품을 배달할 수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중년 이상 여성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소비자들은 신선한 유제품을 받아볼 수 있어 만족도가 크게 올라갔고 그 결과 매출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이 전동카트에 기가 막힌 신기술이 적용되었을까? 아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여러 기술을 잘 융합해 전에 없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한 것이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창조와 융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호기심, 그리고 주변에 관심을 갖고 면밀하게 관찰하는 통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존 기술의 아름다운 조합이 사람을 향한 기술과 제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에너지 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찬반양론이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이나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창조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 기술을 잘 융합해 전에 없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전제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이 땅에 사는 현재의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위한 기술에 바탕을 두었으면 좋겠다. 모든 기술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듯 에너지 역시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향한 기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창조#융합#기술#사람#원자력발전소#에너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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