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리감독 소홀 건설기술사 형사처벌 추진
과실 범위 불명확한 것도 논란… 국토부 “감리업무 부실때만 적용”
정부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공사 발주자에게 손해를 끼친 건설기술사를 형사 처벌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건설기술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실 공사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발주처나 시공사보다 현장 권한이 제한적인 감리자에게 지나친 책임을 묻게 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3일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논란이 시작된 것은 올 1월 정부가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다. 개정안에는 ‘발주처에 손해를 끼치는 건설기술사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2015년 발생한 수서평택고속도로 공사 현장 붕괴 사고와 같이 감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부실시공을 눈감는 관행 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건설기술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관리협회 등 유관단체는 “공사 현장에서 감리자의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고 실질적인 결정은 발주처에서 다 하고 있다”며 법안 개정에 반대했다. 발주처의 금전적 손실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데 별도의 처벌 규정을 만드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것도 반대 이유 중 하나다.
감리자가 책임져야 할 과실의 범위가 불명확한 점도 논란거리다. 개정안은 △바다나 하천시설물의 침식 △철근콘크리트 염해(鹽害)와 부식 등도 감리자의 중대 과실이 있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김용구 도화엔지니어링 본부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생하는 결함까지 감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다양한 결함 가능성을 감리자가 모두 예측할 순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벌칙 조항이 적용되는 것은 감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로 한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개정안이 발주자가 결함의 책임을 감리자에게 묻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도 ‘최대 2년 이하 징역 또는 최대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수정안을 제시한 상태다.
부실시공이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선 건설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리단장 A 씨는 “발주처나 시공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감리자를 최소한으로 두려고 한다”며 “설계가 적절한지부터 품질관리, 환경영향 점검, 주민 민원까지 감리자 1명이 모두 처리해야 하는 현장도 많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발주처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불공정 관행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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