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철강 보호주의로 간다면) 우린 며칠 내로 보복 조치를 할 것이다. 유럽연합(EU) 안에선 지금 무역 전쟁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독일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7일(현지 시간)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작심하고 경고를 날렸다.
트럼프발(發) 글로벌 ‘철강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미 상무부가 4월부터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진행한 ‘수입 철강의 안보 영향 조사’ 결과도 이달 안에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의 방향은 미국 내 철강산업을 국가 안보 이슈와 연결해 철강 생산 및 자급력을 높이고 수입 철강에 보호무역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표밭이자 전통적인 철강·자동차 공업지대인 미국 중서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도시) 지역을 의식한 행보다. 모든 수입 철강에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철강업계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대규모 자동차산업을 보유한 미국은 한국의 주요 철강 수출 대상 국가다. 지난해 기준 한국산 철강 제품 수출 국가별 비중에서 미국(12.1%)은 중국(14.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통상 무풍지대’였던 철강업계는 2014년 이후 미국발 수입 규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된서리를 맞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량은 올해 1∼5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했다.
미국이 대표적으로 견제해온 품목 중 하나는 자동차 강판으로 주로 쓰이는 냉연강판이다. 지난해 이미 최고 65% 수준의 폭탄 관세를 부과받았다. 냉연강판은 포스코가 주로 수출하는데 러스트벨트 지역의 주 생산 품목과 겹친다.
최근에는 유정용 강관(원유·천연가스 채취에 사용되는 고강도 강관)이 표적이 되고 있다. 현대제철과 넥스틸, 세아제강 등이 수출하는 유정용 강관에 대해서는 값싼 중국산 자재를 수입, 재가공해 미국에 보낸다고 현지 철강업체들이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중국산 자재의 우회 수출 비중은 2%에 불과하다는 게 국내 철강업계의 설명이다.
미국 현지 자동차업계에서도 반발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을 대변하는 미국 자동차협회는 5월 “외국산 철강 관세를 올리는 것은 미국 자동차 부문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원자재 값 인상으로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돼 채용이 줄어들게 된다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상무부 조사 결과에 대해 크게 △일괄적인 추가 관세 부과 △품목별·국가별 쿼터량 제한 및 초과량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대미 철강 수출 주요국인 EU와 중국 정부는 지난달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서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철강 관세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해당 조사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도 긴급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여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정열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산업정책관은 지난달 열린 ‘철강 수입규제 TF 긴급점검 회의’에서 “추가 관세 부과, 수입 물량 제한, 관세 할당 등 우려되는 조치들에 대해 다양한 세부 시나리오별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업체들도 미국발 수출 가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이 3월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4월 미국 워싱턴에 현지 통상사무소를 열고 상무보급을 소장으로 앉혔다. 현지 철강업체들이 생산하지 않는 기가스틸 등 프리미엄 제품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현대제철은 기존에 있던 통상팀을 통상전략실로 확대하는 한편 중국 등 다른 수출국 비중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드와 북핵 등 여러 외교 문제가 얽혀 EU나 중국에 비해 정부가 표면적으로 나서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대안시장 확대 및 대미(對美) 대응 등에서 정부와 철강협회, 각 사가 적극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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