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4일 취임사에서 ‘문화·생태·복지 농촌’을 중장기 비전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 교육, 교통 등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복지와 기초생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생태, 경관, 문화 등 농촌 고유의 특성을 보전하고 발전시켜 아름답고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이 이날 내놓은 농촌정책은 △소득안전망 확충 △농업의 생명산업화 △국가 차원의 푸드플랜 수립 △미래 블루오션으로 농업 육성이라는 부문별 비전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성장산업인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어 개별 농가의 소득을 증대함은 물론 주거 및 경제 단위로서의 농촌을 재건한다는 계획이다. 김 장관이 그린 미래 농촌의 청사진은 기존에 6차산업을 도입한 농촌 마을에서 그 가능성이 발현되고 있다. 개별 농가에 이어 마을 단위의 성공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 공동 출자로 찜질방, 황토방 지어
전북 완주 안덕마을은 4개 마을 주민들이 뜻을 합쳐 한증막을 이용한 건강·힐링체험마을을 조성했다. 안덕마을 제공
모악산 자락에 있는 전북 완주 안덕마을은 20년 전만 해도 아기 울음소리가 나지 않는 산골이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버린 탓이었다. 자칫 지도 속 흔적으로 남을 뻔했던 이 마을이 한국 최초의 ‘건강·힐링체험마을’로 재탄생한 건 2008년 주민들이 “우리도 한번 해보자”며 뜻을 모은 덕분이었다.
당시 안덕리 4개 마을(미치·신기·원안덕·장파마을) 주민들은 각각 회관을 하나씩 짓기로 했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각 마을이 공동으로 사업을 하자고 결의했다. 이를 통해 나온 게 안덕파워영농조합법인이다.
마침 이곳에는 원래 유명한 한의원이 한 곳 있었고, 산골마을이라 약초도 흔했다. 여기서 착안해 한의원의 한증막을 임차한 뒤 10가지 한약재를 달인 물로 황토를 개어 구들장을 놓았다. 보일러 대신 참나무 장작으로 사시사철 군불을 때는 데다 한약 기운이 배어나오다 보니 찜질에 그만이라는 입소문이 멀리 대전까지 퍼졌다.
주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폐금광을 활용한 냉찜질, 옛 서원을 복원해 세운 요초당의 전통혼례 체험 등을 선보였다. 또 숙박시설을 확충해 마을 전체가 체류형 공간이 되도록 했고, 마을에서 키운 로컬푸드를 재료로 쓰는 농가 식당도 운영 중이다. 현재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만 12명의 상근 인력이 투입된다.
인덕마을은 농식품부 주최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소득·체험 부문 은상을 차지하는 등 마을주도형 6차산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 매출 일부 지역 환원해 공동체 복원
전남 나주 화탑마을은 마을회와 영농조합법인이 힘을 합쳐 수익사업과 복지사업을 공동으로 꾸려 가고 있다. 원예체험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모종을 심고 있다. 화탑마을 제공 전남 나주 화탑마을은 인근 농가에서 사육된 암소 한우고기를 직거래 매장을 통해 싸게 판매한다. 특히 농특산물전시판매장에서는 꽃등심, 차돌박이, 안심 등 한우 부위별로 고품질의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고기에 입소문이 나며 자연히 마을에 손님이 늘었다. 마을을 찾아 한우고기를 사거나 지역 농가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 먹으려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늘자 주민들은 서비스 수준을 높여 관광 및 체험마을로 변신을 시도했다. 쇠고기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쌈채소 텃밭을 조성하고 계절별로 채소 심기와 수확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 당초 농수 공급용으로 만들어두었던 저수지에는 오리보트를 띄웠다. 식사와 함께 놀거리도 제공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화탑마을은 연매출 10억∼20억 원을 내고 있다. 하지만 화탑마을의 진정한 힘은 공동체 본연의 가치를 잊지 않고 운용의 묘를 극대화한 데서 나온다. 화탑마을은 지역 환원 차원에서 매출의 5%가량을 마을기금으로 적립해 주민 복지, 마을 시설 보수 등 마을공동체 복원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마을회와 화탑영농조합법인의 협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법인이 추진 방향을 제안하면 마을회가 세부 운영사항을 결정한다. 주기적으로 마을포럼을 열고 6차산업화 추진 전략회의와 경과보고를 겸해 주민들의 사업 이해도 및 참여도를 끌어올린다. 화탑영농조합은 지난해 우수 사회적 경제기업으로 선정되며 서로 돕는 마을공동체를 복원한 공을 인정받았다.
○ 폐교 리모델링해 수련원으로
전북 무주 호롱불마을은 주민들이 폐교 등 마을 자원을 이용해 농촌체험 관광지로 변모시킨 사례다. 관광객들이 트랙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호롱불마을 제공 전북 무주 호롱불마을은 본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마을주민 65가구 200여 명이 연줄로 이어져 제사도 함께 지낸다. 하지만 도시로 계속 인구가 빠져나가는 반면 유입인구는 줄어 기곡초등학교가 폐교하는 등 한때 쇄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은 건 6차산업화 전략이었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청소년수련원을 지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남대천에는 뗏목을 띄웠다. 이렇듯 마을 자원을 활용해 농촌체험관광지로 탈바꿈시키자 전국에서 숙박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특히 수학여행, 수련회 등 청소년 단체여행지로 인기가 높아 어느덧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마을이 됐다. 마을 법인을 주축으로 주민이 합심해 이룬 성과였다.
어두컴컴한 시골 밤하늘을 천혜의 천문관으로 만들었고, 폐교에 청소년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농사용 저수지를 단란한 가족의 즐길거리로 변화시킨 건 주민들이 힘과 지혜를 모은 결과였다. 살기 좋은 마을을 위한 농가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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